[금융시장 안정대책 국내외 반응] 급한 불 껐지만 물가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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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큰 불길은 잡았지만 아직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 4일 정부가 발표한 대우 워크아웃 계획과 금융시장 안정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다. 투자신탁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성업공사의 투신사 보유 대우채권 무제한 매입 등 정부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함에 따라 일단 시장의 불안은 해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초강수가 동원되다 보니 시중에 자금이 뭉텅이로 또 풀릴 것으로 보여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게다가 대우 워크아웃 계획이 차질없이 이행될지 여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 급한 불은 껐다〓이번 대책은 무엇보다 대우에 대해 밝힐 것은 다 밝혀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믿음을 얻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빌 헌세이커 ING베어링 이사는 "실사 결과가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매우 투명하게 나왔다" 며 "시간이 촉박했지만 외국인들도 납득할 만한 수준의 결과" 라고 평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금리 안정인데 정부대책은 단기에 집중돼 있어 금리 안정세를 유지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 라며 "물가불안 해소를 위한 대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덕훈 박사도 "정부는 환매가 일어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고 발표했지만 투신사에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며 "투신에 대한 근본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 주가와 금리엔 긍정적〓그동안 주가는 대우와 투신문제라는 외부요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된 만큼 이제는 내부요인에 의해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요인만 따진다면 주가전망은 낙관론이 우세하다.

김헌수 메릴린치증권 이사는 "지난 4개월 동안 대우와 투신문제 때문에 금융시장이 짓눌려 왔지만 이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된 만큼 주가 전망은 낙관적" 이라고 내다봤다.

헌세이커 이사도 "지난 몇달 동안 외국인 투자가 주춤했던 것도 대우 관련 불확실성 때문이었으나 이제는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에 주가는 바닥을 쳤다고 본다" 고 말했다.

강창희 현대투신운용 부사장은 "당분간은 대우로 인해 직접적인 손실을 입는 금융주와, 그렇지 않은 주식이 차별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 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고객의 환매요구에 밀린 투신사들이 보유 채권을 마구 내다 팔아 장기금리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는 일단 해소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이수길 한빛은행 부행장은 "채권시장안정기금에 여유가 있고 시중에 돈도 많이 풀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리는 당분간 안정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변수는 아직 있다. 오는 10일이나 내년 2월 8일 투신에 대규모 환매가 몰릴 때 정부 기대와 달리 '하이일드펀드' 등 투신의 신상품으로 자금이 들어오지 않을 경우 투신의 채권매수 여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해외 채권금융기관〓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 외국계 은행 임원은 "외국 채권은행들이 대우 워크아웃안을 검토 중이나 적어도 대우 계열사를 상대로 변제 소송을 내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 말했다.

이 임원은 "채권단 내에 워크아웃에 따르자는 분위기도 있으나 일부에서는 채권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조기 상환받고 대우 문제를 털어보겠다는 조건부 옵션을 요구하고 있다" 고 밝혔다.

워버그증권사 싱가포르지점의 애널리스트 스콧 윌슨은 "대우 부채가 발표보다 더 커질 수 있고 은행들이 손실부담으로 타격을 입는 게 우려되지만 한국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준비가 돼 있어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본다" 고 말했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의 이승훈 이사는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와 기업의 펀더멘털은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대우와 투신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미국 증시의 움직임도 유동적이어서 주식시장이 불안할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 대우그룹 반응〓대우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회계법인들이 나중에 혹시라도 책임을 질까봐 자산의 보유가치를 무시한 채 청산가치를 기준으로 너무 보수적으로 실사했다" 며 "보수적인 실사 결과만으로 기업의 장래를 결정하기보다는 향후 영업 잠재력을 고려한 미래가치에 따라 결정됐으면 한다" 고 밝혔다.

그는 또 ㈜대우의 청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대우는 국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당초 워크아웃 계획대로 무역.건설.관리 등 3개 분야로 분할해 자생력을 살리는 것이 국가경제나 채권단의 채권회수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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