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알렌 치넨 교수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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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0대 이후의 삶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인가. 어렵고 고단한 일들이 반복되고 켜켜이 쌓이기만 하는 서른 이후. 인간은 비로소 이때부터 두 번째 인생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왕자가 늙어 대머리가 되고 공주가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 ' 미 정신분석학자며 정신과 의사인 캘리포니아대 알랜 치넨 교수가 쓴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황금가지.8천원)은 화려한 젊음을 뒤로하고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그득한 중년들을 위한 글감을 녹여낸 독특한 스타일의 심리분석서다.

열 여섯 토막으로 나눠진 이 책은 각 얘기 앞에 한국.중국.독일 등에서 채집한 동화와 설화가 먼저 등장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칼 융의 분석 심리학적 시각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중년이 되면 자연스레 생겨나는 갈등과 번민들을 편안하게 해석한다.

그리고 높지 않은 목소리로 지루하지 않게, 깊이가 있으면서 설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대안을 차근차근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는 학자적이거나 객관적 입장에서 동화와 설화를 분석하기 보다 자신의 꿈과 체험까지를 글 속에 담아내면서 친근한 인간미를 풍겨낸다. 중년은 젊은 시절 노력과 투쟁으로 성취한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먼저 다가오는 것이 젊은 시절에 대한 마법의 포기 요구다. 한국 전래 동화인 '마술주머니' 와 독일 동화 '요정과 구두장이' 에서 지적하듯 남자와 여자는 중년에 진입하며 젊은 시절 가졌던 유토피아적 조망과 낭만적인 꿈들을 포기해야한다.

순수한 감상은 일로 바뀌고 이상주의는 현실로 환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단계를 '피터팬 신드롬' 이라 불리는 융 학파의 '퓨어(Pure)컴플렉스' 를 극복하는 시점으로 간주하며 중년은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사회의 버팀목이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젊은 시절 이상의 상실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다음 세대로, 궁극적으로 사회로 변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이다.

중년에 계속되는 변화 중 남녀 성역할의 전복과 죽음과 사악함 그리고 비극과의 대면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는 용맹스런 왕비가 불운에 빠진 왕을 구원하는 '피리 부는 왕비' (러시아) 등의 예를 통해 하강하는 남성과 지혜로워지는 여성을 대비시키고 '죽고 싶지 않은 남자' (일본) 등에서는 중년에 조우하는 죽음과 운명의 공포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남녀 역할의 교환은 성과 인간의 경험에 대해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공포에 대해서는 절망과 냉소주의가 원인인 만큼 재치가 위로를 준다는 식의 치유책을 각 대목마다 내놓는다.

혹 이렇게 내려지는 치넨 교수의 대안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라는 식의 처세술 제안으로 기대한다면 그건 아니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책 속으로 침잠해 내 자신 속으로 들어가 본다면 차분하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가 떠오르는 그런 글이다.

이 책의 번역은 신경정신과 의사인 이나미씨가 맡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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