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맡은검찰 신속 대신 신중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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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장악문건' 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발걸음이 무척 신중하다.

지난 27일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데 이어 28일 중앙일보가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을 역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검찰의 부담이 부쩍 커진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 李전수석측 대리인을 불러 조사했으나 "수사를 결코 서두르진 않겠다" 고 못박고 있다. 난마(亂麻)처럼 꼬인 사건 실체가 정치권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속도를 내기가 곤란한 까닭이다.

올초 안기부 정치사찰 시비를 불렀던 '국회 529호 강제진입 사건' 에 대해 덜컥 수사에 나섰다가 별 수확없이 물러섰던 기억도 발목을 붙들고 있다.

서울지검 고위 간부는 "관련자들의 주장이 얽히고 설켜 아직은 어떻게 수사를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고 토로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은 사태 추이를 지켜볼 시점이란 얘기다.

또다른 변수는 국정조사 여부. "여야가 논의 중인 국정조사가 개시될지에 따라 수사 완급을 뗌꽁?필요도 있을 것" 이라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鄭의원 발언들이 면책특권 범위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해 관련 법률과 판례 등을 정밀 검토 중이다.

"李전수석이 문건의 작성자" 라고 주장한 鄭의원의 국회 발언이 거짓으로 판명될 경우 면책특권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법률적 논란이 거세기 때문이다. 아울러 鄭의원이 지난 26일 기자들에게 "李전수석의 여의도 사무실 내 컴퓨터와 프린터를 조사하면 문건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한 말과 국회 내 발언 사이에 연계성을 인정, 면책 대상으로 삼을지 여부도 쟁점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중앙일보가 국민회의 이영일 대변인 등을 고소한 사건의 경우 문건 전달경로를 파악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 정치권 등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본사 간부나 직원이 문제의 문건을 鄭의원에게 건넨 사실이 전혀 없다" 는 중앙일보측 주장의 진위 여부가 여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본격수사에 착수하면 쉽게 사건이 풀릴 것으로 조심스레 낙관하고 있다. "일견 사건 구도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 는 게 그 이유다.

수사 관계자는 "문건 작성자인 문일현(文日鉉)씨와 최종 입수자인 鄭의원의 신원이 확인돼 중간 경로만 밝히면 되는 것 아니냐" 고 자신했다.

결국 정치공방을 통해 어느 정도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 뒤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게 검찰 주변의 대체적 시각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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