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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이달의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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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현대시조는 오늘의 정서를 대변하는 목소리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응모된 작품의 상당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고답적인 소재와 고루한 생각들에 얽매여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새로운 서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겨울 숲을 "퓨즈가 나간 집"으로 볼 수도 있으며, 꽃은 버려진 타이어 안에서도 피어난다. 생명의 가열한 몸짓을 어찌 낭만적으로만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한분옥씨의 '광개토대왕비'를 장원으로 뽑는다. 다소 거친 표현들이 있지만 작품이 갖는 의미를 높이 사기로 했다. 거침없는 기개와 원대한 개척의 의지로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열어간 서사적 인물을 호쾌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눈앞의 명리를 좇아 정신이고 역사고 경제고 그 모든 것이 답답한 오늘, 이 지리멸렬함 위에 불보다 뜨거운 웅지의 함성이 내리꽂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시랑씨의 작품은 새롭다. "철모르고 싹을 틔워"라든지 "콩낱 한 알"에서 보듯 알파벳 대문자 Q가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형상과 이와 관련된 이미지를 잘 그려내었다. 다만 첫 수의 내용이 둘째 수에서 좀 더 구체화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금순희씨의 '가을산'은 가을산의 흥취를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정적인 배경을 동적으로 바꾸는 서정의 힘이 돋보인다. 같이 보낸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응모한 분들 중에는 이미 등단하여 활동하고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논외로 하였다. 시조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작품도 더러 보이는데 우리말의 네 박자 형식을 생각한다면 쉽게 극복되리라 믿는다. 한덕.변정용.홍준경.이계동.석성혜.황경태씨 등의 작품이 마지막까지 주목되었다.

<심사위원:유재영.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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