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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세상 파괴하는 넷반달리즘 일상 폭력보다 훨씬 파괴력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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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0대 여중생들이 친구 하나를 둘러싸고 때리는 동영상이 포털사이트에서 퍼져 나간다. 성폭행범 조두순으로 지목된 무고한 남성의 사진이 ‘미성년 성폭행범’이란 제목으로 유포된다. 공통점은 많은 사람에 의해 개인의 인격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이다.

강원대 사회학과 유승호 교수는 온라인 상에서의 이 같은 파괴 행위를 ‘넷반달리즘(Net-Vandalism)’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공동체의 감시체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20일 인천대학교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엄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디지털 융합)의 사회적 의미’에서 발표한다.

심포지엄은 디지털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융합 현상을 소개하고 이에 따르는 사회적 파장과 변화를 전망한다. 이 자리에서 유 교수는 인터넷상에서의 파괴 행위를 ‘공유지의 비극’이란 개념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주인 없이 모두 함께 쓰는 땅은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훼손되기 쉽다는 뜻의 학문적 개념. 인터넷 공간 역시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이용자들이 사회적 규범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넷반달리즘은 일상생활의 폭력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다”고 경고했다. 1인 미디어(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개별 이용자 모두가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확성기’를 쥔 셈이라는 것이다. 유 교수는 넷반달리즘의 대안으로 ‘느슨한 감시’를 주장했다. 네티즌들이 서로 잘못된 행동을 메일이나 댓글로 지적해 주는 식이다. 유 교수는 “정부의 직접적인 감시와 통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대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하도록 해야 익명성의 덫을 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선 또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NGO대학원)가 ‘디지털 사회의 융합 정체성’을 주제로 발표한다. ‘경제 대통령(온라인)’과 30대 무직자(오프라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미네르바’, 평범한 주부로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며 식품·가전 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성실(34)씨 등이 예다. 김문조 한국사회학회장은 “디지털 융합 현상 자체도 큰 변화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올 후폭풍은 훨씬 엄청날 것”이라며 “이 변화를 학계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넷반달리즘(Net-Vandalism)=문화·종교·예술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 행위를 가리키는 반달리즘 이 온라인상에서 자행되는 현상. ‘디지털상에서의 이유 없는 일탈·파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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