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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지리 외로 품고 만추속으로-섬진강 오토드라이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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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늘 그리운 곳/연분홍 매실꽃과 키작은 대나무/은어가 산다는/꿈결같은 곳/…(중략)…속삭이는 대나무의 이야기에 묻혀/세월을 잊고 싶은/그리운 섬진강. (천영애 시인의 '섬진강' )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전남.북.경남 등 3개 도를 넘나들며 지리산을 끼고 도는 '남도의 젖줄' 섬진강. 산과 강과 길이 조화를 이뤄 천혜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이곳은 때묻지 않은 자연의 미가 살아있어 '지리10경'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전남 구례~경남 하동을 잇는 19번 국도는 화엄사.연곡사.쌍계사 등 고유의 사찰과 문화재들이 풍부해 드라이브의 묘미뿐 아니라 영호남의 가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구례 화엄사 입구에서 시작된 드라이브 코스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이 상춘객의 발길을 유혹하고 가을이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나무가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조금 달리면 오른쪽으로 섬진강이 성큼 다가선다.

'좌 지리 우 섬진' . 섬진강 1백리 길을 달리다 보면 햇볕에 반짝이는 섬진강 흰 모래가 눈이 부실 정도다.

왼편으로 보이는 지리산 8부능선에는 곱게 물든 단풍이 아래로 소리없이 내려오고 초록의 향연을 펼치는 길가에는 바람에 살랑대는 코스모스가 사람들을 반긴다.

엄마의 품처럼 너른 지리산 자락을 따라 남해로 빠져드는 섬진강 1백리길에는 이처럼 곳곳에 가을이 묻어난다. 선경이 따로 없을듯 싶다.

운조루를 지나 하동방향으로 계속 달리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는 섬진강 줄기따라…' 로 유명한 화개장터에 닿는다.

'영.호남 화합' 의 상징인 화개장에는 옛 모습은 찾을 길없고 섬진강에서 잡히는 참게.재첩 등을 파는 음식점의 현란한 간판이 빈 자리를 대신한다.

화개장에서 1023번 지방도로를 타고 쌍계사 10리길로 빠지면 또다른 별천지가 반긴다. 쌍계사 주변 수많은 전통다원에서 퍼져나오는 향긋한 차내음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창밖으로 내다보는 가을 풍광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차들 돌려 하동쪽으로 빠져 나와 5분가량 달리면 수확으로 바쁜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지리산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는 이 마을이 바로 소설 '토지' 무대로 이름난 평사리 악양벌이다. 인근에 신라시대에 축성한 고소산성에 올라 탁 트인 들판을 바라 볼 수 있다.

평사리를 지나 강폭이 넓어지는 하동포구에 다다르면 섬진강 은빛 물결 속에 재첩잡이를 위해 떠있는 조각배들이 가을 오후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나무 울창한 송림공원 백사장에는 가을을 머금은 파란 물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고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때쯤 섬진강의 가을도 깊어만 간다.

섬진강〓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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