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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동 재개발구역' 문화재보호는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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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시가 도심의 문화유적지 바로 앞에 초대형 평형 고층아파트 건립을 결정해 유적지 보호 및 자연경관 훼손은 개의치 않는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 결정은 '도심 문화재 인근을 개발할 때는 기존도로와 주택 등을 가능한 한 보존한 채 개발한다' 는 내용의 '도심재개발 기본계획' 개정내용 발표를 불과 19일 앞두고 내려진 것이어서 의문을 더해주고 있다.

건립이 추진되는 아파트는 90~50평형대까지 대형이 대부분이어서 서울시가 개발업자.원주민의 이익만 고려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 아파트 건립결정 및 계획〓서울시는 지난달 15일 시 도시계획위를 통해 종로구 사직동54 일대 4만1백여㎡(1만2천1백70평)를 사직1 도심재개발구역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노후 주택과 상가들이 있던 이곳이 완전 철거되고 14층짜리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인왕산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경희궁과 35m 떨어져 있으며 사직단(조선조 사당을 모신 곳)과는 폭 25m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도시계획위 결정은 서울시장이 최종 결재하지만 여지껏 이 결정이 뒤집힌 경우는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 재개발구역고시와 종로구청의 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를 거치면 착공에 들어간다.

지역주민들은 다음달 조합설립 인가를 마치고 내년 3~4월 중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시공사로는 2개의 대형 건설업체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해 종로구청장이 입안한 건립 계획안에 따르면 아파트는 ▶90평형 90가구▶70평형 90가구▶51평형 1백82가구▶45평형 45가구▶36평형 1백20가구 등 5백27가구가 건립될 예정. '도시계획위측은 "지역 특성을 감안, 아파트 높이를 당초 16층에서 14층으로 낮췄다" 고 밝혔다.

◇ 도심재개발 기본계획〓서울시는 지난 4일 역사문화 자원 및 도심부의 특유한 매력을 보전하겠다는 취지로 이 기본계획 개정내용을 발표했다.

사직1지구 결정이 내려진 지 불과 19일 후였다. 이 계획은 도심 건물높이는 30~90m(층수 5~20층)로 제한하며 개발 때는 정비와 보전을 함께 하는 '수복(收復)재개발' 을 처음으로 도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르면 사직1지구는 건물 최고높이가 50m에 층수는 10층 내외로 제한되며 역사유물 보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 문제점〓1년 동안 재개발기본계획 개정을 준비해 온 서울시가 개정내용 발표를 앞두고 사직1지구를 지정했다는 점이 의혹을 부르고 있다.

시 도시정비과장은 "사직1지구가 수복재개발지구에 해당되는 줄은 미처 몰랐다" 고 해명했으나 쉽게 납득되지 않고 있다. 이 결정을 앞두고 시 문화재과를 비롯, 도로계획과.도시계획과 등 유관부서와 상당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고층아파트 건립에 반대의견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인왕.북악산 경관훼손▶유적지 훼손▶교통난 가중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역지정 결정이 논란 끝에 두차례 연기되는 과정에서 반대를 한 도시계획위원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인근 지역과 다른 건축규제의 형평성도 문제된다.서울시는 이곳에서 5백여m 떨어진 경복궁 일대는 건축물 높이를 16~20m 이내로 제한하는 고도지구로 지정하고 있다. 반면 사직1지구는 최고높이 50m까지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했다.

도시계획전문가 김진애(金鎭愛.서울포럼 대표)박사는 "이 지구는 작은 집들과 길이 보전돼야 인왕산과 사직단의 분위기에 걸맞다" 며 "지금이라도 서울시장이 철회결정을 내리는 게 타당하다" 고 주장했다.

문경란.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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