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요리] 고양시 김애경씨 '찬밥부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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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벌이 가시면 동생들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맏이인 제 몫이었지요. 어머니가 따로 놓아둔 달걀을 찾아내 찬밥부침을 해주면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어요. "

2남2녀의 맏딸인 김애경 (37.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주부는 과거 넉넉지 못한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부엌살림을 도왔다.

요즘은 집집마다 냉장고 안에 먹을 것이 가득하고 전기밥솥에는 항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 밥이 들어있지만 그 당시에는 엄마가 차려주지 않는 밥상은 찬 밥과 먹다 남은 김치가 고작이던 때. 게다가 계란 하나 맛보는 것도 '특별한 일' 이던 시절이다.

"먹을 땐 동생들과 맛있게 먹었는데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가 되면 걱정이 앞섰어요. 따로 쓰려던 달걀도 없어진 데다 귀한 식용유도 푹 줄었으니 어머니의 호통은 당연했지요. "

나이를 먹고 생활형편이 풀리면서 그는 한동안 찬밥부침의 추억을 잊고 지냈다.

첫딸 희정(중1)이가 유치원에 들어가 간식을 챙길 때가 되면서 그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찬 밥에 달걀만 넣는 대신 냉장고 안에 있는 온갖 재료를 함께 넣었다.

예전과는 달리 달걀도 넉넉히 넣을 수 있어 밥알이 흐트러지지 않아 모양새도 갖췄다.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했던 대로 어린 이모와 외삼촌들 못지 않았다.

첫 선을 보이던 날 아이들은 한 개를 부쳐낼 때마다 서로 먼저 달라며 아우성을 쳤고 스테이크 요리 같다고 포크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제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희정이네 특별메뉴다.

막내 주원(초3)이는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는 찬밥부침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먹는 라이스버거 보다 훨씬 맛있다" 며 과찬을 아끼지 않는다.

얼마전 엄마가 잠시 외출한 틈을 타 둘째딸 연희(초5)도 찬밥부침을 만들어 봤다.

비록 소금 넣는 것을 잊어버린 데다 식용유 대신 참기름을 넣어 엉망이 되긴 했지만 "다음엔 엄마가 쓰지 않는 치즈까지 넣어 만들어 볼 작정" 이라며 의욕이 대단하다.

"요리도 손쉬운데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재료' 가 대부분이니 부담없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보세요. " 김씨는 "아이들과 한결 가까워질 것" 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 만드는법

▶재료〓찬밥 2공기, 달걀 4개, 소금 1작은술, 식용유 약간,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것들 (파, 양파, 당근, 감자, 호박, 기타 냉장고에서 구르고 있는 각종 나물이나 야채)

▶조리순서〓①찬밥을 큰 그릇에 옮겨 담는다. ②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것들 가운데 있는 것은 잘게 썰거나 다진다. 다진 재료의 양은 밥의 반정도가 적당. ③찬밥에 다진 재료와 달걀, 소금을 넣고 잘 섞는다. ④후라이팬에 먹기 좋을 정도의 크기로 적당히 떠서 중간 불에서 노릇노릇하게 붙친다. ⑤예쁜 접시에 1~2개씩 담아 김치와 함께 낸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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