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독감백신 접종현장서 본 문제점·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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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주민센터에서 노인들이 독감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이날 주민센터에는 체감온도 11.9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전 5시부터 접종을 하기 위해 많은 노인이 몰렸다. [김도훈 인턴기자]

16일 오전 6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주민센터 앞. 민점숙(78·여) 씨가 파란색 번호표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47번. 독감백신 접종대기표다. 이날 대기표 배부는 오전 5시부터 시작됐다. 2번 대기표를 손에 쥔 최재례(76·여)씨는 “새벽에 교회를 다녀왔다가 오전 5시 넘어 대기표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전 8시30분 접종이 시작되자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대기표가 의미가 없었다. 줄이 50m 정도 이어졌다. 2시간 넘게 기다린 민 할머니는 “몸이 덜덜 떨리지만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 낫겠지”라고 말했다.

요즘 전국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독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보름 만에 4명의 노인이 숨지고 2명이 중퇴에 빠졌다. 아직까지 약(백신)에서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망자가 잇따르는 이유를 접종 방식에서 찾는다. 삼성서울병원 박승철(감염내과) 교수는 “고혈압 등 질환이 있는 노인이나 만성질환자가 쌀쌀한 날씨에 그냥 서서 2시간 이상 기다리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서울지역의 체감 온도는 11.9도였다. 이날 오전 1시 이후 가장 낮았다. 상당수 노인이 겨울 옷을 입긴 했지만 모자를 안 쓴 사람이 꽤 많았다.

노인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또 다른 문제가 목격됐다. 간호사들이 예진표를 작성하면서 “아픈 곳이 있느냐”고 물었고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가 어두운 데가 실내가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공간이 협소해 접종을 받은 노인들은 앉을 겨를도 없이 서둘러 주민센터를 나섰다. 접종 후 20분간 앉아서 안정을 취하게 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새벽부터 몰리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선 병·의원으로 접종 창구를 분산시키는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 방식을 참고할 만하다. 강남구는 2004년부터 전국 최초로 관내 병·의원에서 독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구청은 노인들에게 접종 가능한 169개 병·의원 명단을 보내 거기서 맞도록 권고한다.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편한 시간에 접종을 하면 된다. 명단은 구청이 온라인으로 병원에 전달한다. 일종의 바우처(구매권) 방식이다. 두 구에서는 5년 동안 사망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백신 구매 비용이 두 배로 올라간다. 예산 여유가 없는 지자체에는 부담이다.

일선 보건소가 통별로 접종 일정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접종 날짜나 시간을 지금보다 더 분산하는 것이다.

넓은 데서 접종하면 사고 위험을 다소 줄일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 보건소 관계자는 “학교 등의 시설에서 단체접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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