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효행상 대상받은 KBS 홍순창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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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방송의 겉모습은 화려하다. 드라마든,가요든, 코미디든 주로 스타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방송사 PD도 예외는 아니다. 가급적 스타들을 동원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락성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이런 방송 환경에서 가장 소외받는 사람은 단연 노년층이다. 방송사 PD조차 노인 대상 프로그램을 꺼린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노인 프로그램은 여간해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노인 프로를 22년 동안 제작해온 PD가 있다.

KBS의 홍순창(48)부장PD가 그 주인공.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 저만큼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없을 겁니다. "

홍PD가 처음 연출한 프로그램은 옛 TBC의 '장수무대' . 이후 TBC가 KBS로 합병된 이후에도 'TV 장수만세' '할아버지 할머니 솜씨대회' '할아버지 할머니!' '100세 퀴즈쇼' '사랑의 삼각끈' 등을 만들었고, 현재는 '파워 100세' 의 제작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 어지간한 집념이 없으면 스타가 끌어가는 방송에서 견뎌나가기 힘든 위치지만 후배로부터는 "선배는 미워할 수 없어. 경쟁상대가 아니니까" 란 농담을 듣는다.

최근 이같은 공로로 제24회 삼성효행상에서 경로부문 대상을 수상한 홍PD는 "방송에 나와 고맙다고 치마 속에서 귤 한 개, 껌 한 통을 꺼내주는 어르신들의 작은 정성은 다른 어떤 PD도 느끼지 못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홍PD가 노인 프로에 뛰어든 계기는 두 가지. 하나는 8남매의 막내인 그의 셋째 형이 해준 "너는 어려운 사람을 위한 프로를 만들어야 한다" 는 충고. 두번째는 방송사에 입사한 다음날 그의 어머니가 "이제 막내가 취직했으니 내 일은 다 끝냈다" 며 40년 동안 입었던 몸뻬 바지를 장롱 속에 넣는 것을 본 것.

그는 방송 외에도 노인을 위한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사회복지법인 대표로 자원봉사를 하며 노인 2천5백여명에게 일자리를 연결하는 성과도 올렸다. 인건비.사무실 임대료 등 경비도 스스로 조달해 장인.장모의 집을 처분하고, 아내와도 이혼 직전까지 가는 등 어려움이 컸다고 말한다.

'실버프로' 에 전념하다보니 노인에 대한 철학도 생겼다. 우리의 전통 가치관인 효의 현대화와 대중화가 그의 목표라고 강조한다.

"미국에 개척정신이 있고, 일본에 무사정신이 있다면 우리는 효의 정신입니다.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처박힌 효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 세계 공통의 단어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소망입니다. "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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