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 황폐화'를 걱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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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학교교육이 표류 중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뭘 가르칠지, 뭘 배울지를 몰라 떠돌고 있다.

교사 정년단축 파동 이후 교사들은 긍지를 잃고 언제 자리를 뜨나만 노리고 있다. 이미 1만4천여명의 교사가 퇴직했는데 또 1만여명이 퇴직을 바라고 있다.

2002년 대학 무시험전형이 발표된 후 지금 고1년생들은 공부해서 뭘 하느냐며 놀기에 바쁘다고 한다.

대학도 걱정이다. 무시험전형도 좋지만 학생을 평가할 자료가 없다. 학생부와 수행평가 자료에 근거한다지만 이미 공신력을 잃고 있다. 가위 '교육 공황(恐慌)' 에 가까운 황폐화 현상이 교육현장에 일고 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도 무시험전형에 따른 일선학교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달라진 대입시험은 수능성적 반영을 최소화하고 학생부와 수행평가를 중시한다지만 교사 1인이 학생 전체를 평가하기엔 역부족이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을 조사한 결과 실제 고1생들은 뭘 어떻게 배울지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다. 봉사활동과 경시대회 입선 등 비교과자료도 객관성이 문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교육개혁 골자가 교사정년단축과 무시험대입전형이다. 정년단축으로 새 교육환경에 맞는 젊은 교사들을 충원함으로써 교사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 개혁주체여야 할 교사들을 개혁대상으로 몰아 교사들의 긍지와 명예를 짓밟았다. 교사수급 대안도 현실을 외면한 주먹구구였다.

무시험 입시도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사교육비를 줄이면서 적성과 취미에 맞는 새 학교문화를 창달한다는 개혁의 방향과 취지는 분명 옳았다고 본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이 없거나 미비했기 때문에 새 제도와 구 제도간의 과도기적 공백현상이 확산되는 것이다.

바뀐 교육환경에서 교사들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참고할 모델도 없고 재교육과정도 없었다. 무엇이 창의성 교육인지, 적성교육인지 교사들마저 헷갈리고 있다. 이러니 학생들이 겉돌 수밖에 없다.

교육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책반을 구성했다. 우리는 현재 일고 있는 교육 황폐화현상을 조기에 차단하고 당초 개혁정신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우선 제안한다.

첫째, 교사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금 교사들의 마음은 교단을 떠나 있다. 이들을 개혁의 주체로 환원시키고 우수교사에 대한 특별대우와 교사신분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교총이 오래 전 제안한 우수교원확보법도 대안의 하나일 수 있다.

둘째, 무시험입시를 무조건 강행할 게 아니다. 매사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다. 입시 평가자료가 전무한 형편에 수능시험 자체를 용도폐기해선 고교교육의 큰 축이 무너진다.

수능성적 반영률을 교육부가 지시할 게 아니라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 대학은 2002년 입시 기준을 앞당겨 발표하고 수능 반영률을 미리 공표하면 혼란이 사라진다. 수행평가 자료가 본궤도에 들어섰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대학자율로 반영비율을 조절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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