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성범죄’ 형량 낮춰주기 논란 확산 … 29일 토론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형량을 정하는 기준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이 여덟 살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두순(57)에게 ‘술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형량을 줄여 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의 비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양형 기준은 ‘피고인이 술에 취해 심신장애 상태였다’는 점을 형량을 감경해 주는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법률 용어로는 주취감경이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술에 취해 아동을 성폭행한 범죄자는 감경이 아니라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성범죄자에게 주취감경을 두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살인죄에 대한 재판에는 주취감경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 반면 성범죄에서는 세 건 중 한 번꼴로 주취감경이 적용되고 있다”며 “성범죄의 경우 술에 취한, 우발적 상태였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한 범죄의 경우 감경 사유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양형 기준을 두고 있다. 영국에는 알코올과 약물에 의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자의 책임을 더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대법원은 15일 “범죄자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때 어떤 근거로 형량을 줄이거나 늘릴 것인지에 대한 토론회를 29일 연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의 법 감정에 맞는 양형을 위해 다양한 범죄 동기와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재판 과정에 더 많이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범행 동기가 전혀 없었다가 술에 만취해 실수로 폭행 등을 한 경우와 술에 취한 것과 상관없이 범행 동기를 갖고 있었는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충북대 황순택(심리학)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한다. 황 교수는 “술에 취한 상태의 범행이 심신미약 상태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평소 행동 성향과 술을 마시는 양태, 취한 이후의 행동 등을 조사해 범행 당시의 심리 상태를 전반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이인석(판사) 형사심의관은 “강력한 사회방어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주나 약물 복용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범죄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합리적인 양형과 감시 및 치유 등 종합적인 대책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