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 선생 생가 복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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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만리장성에 오른 말년의 정율성 선생.

중국의 대표적 혁명음악가 정율성(1914~1976) 선생의 생가가 복원될 전망이다. 광주시는 15일 "역사학자와 음악 전문가,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고증위원회를 구성해 정율성 선생 생가 복원에 나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박광태 광주시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을 고려해 고증을 거쳐 생가 위치를 확인한 뒤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정율성 선생의 생가를 보려고 광주를 찾는데 광주에서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율성 선생의 생가는 남구 양림동과 동구 불로동을 놓고 남구와 정씨 종친회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남구는 2004년 양림동 79번지에 ‘정율성 선생 생가’란 표지판을 세웠다. 정 선생의 딸 정소제씨 등의 증언과 각종 기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생가터를 지목했다. 주변 길을 ‘정율성 거리’로 이름짓고 중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했다. 이에 대해 정씨 종친회는 토지대장을 찾아내 동구 불로동 163이 정 선생의 생가터라고 맞섰다.

정씨 종친회 등으로 구성된 정율성기념사업회는 토지대장 등을 근거로 2006년 9월 광주시 동구 불로 동에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란 표지석을 세웠다. [정율성기념사업회 제공]

2월에는 정씨 종친회 등으로 구성된 정율성기념사업회가 남구를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광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1138명에서 올 10월 현재 2000여명으로 늘었다. 거의 모두 정 선생의 유적지를 찾고 있다.

김동율 광주시 문화체육정책실장은 “정율성 선생의 유적지에 대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쳐 생가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시는 생가가 복원될 경우 한·중 문화교류와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구 불로동 한옥 한켠에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란 표지석을 세운 정율성 기념사업회의 정찬구(56)부회장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정율성 선생 탄생지라는 표지석만을 보고도 탄성을 지른다”며 “정율성 선생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위춘(55) 광주 중국문화원장은 “중국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율성 선생의 곡을 한 곡 이상씩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율성=광주에서 태어났으나 19살 때인 1933년 의열단(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의 일원이었던 넷째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항일투쟁 중견간부 양성소인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에서 교육받은 후 난징·상하이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벌였다.

38년 중국 공산당의 항일운동 근거지인 옌안의 루신예술학원에 들어가 혁명음악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 때 작곡한 ‘옌안송’은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곡으로 널리 애송되는 중국인의 ‘아리랑’이다.

중국 홍군의 대장정을 답사해 39년 창작한 ‘팔로군 행진곡’은 일본군과 대적해 고난의 길을 걷던 팔로군에게 결사항전의 신념을 고취했다. 49년 중국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인민해방군 군가로 불리다 88년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인민해방군가로 비준돼 중국군대의 공식 군가로 사용되고 있다.

정 선생은 45년 북한에 들어가 조선음악대학 작곡부장 등으로 활동하다 50년 중국으로 돌아와 베이징에 정착, 베이징인민예술극원 등에 소속돼 창작활동을 했다. 76년 작고해 중국 국립묘지인 ‘팔묘산 혁명공묘’에 안장됐다. 가요· 군가· 합창· 동요·가극 등 360여 곡을 작곡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과 국민들이 선정한 ‘신 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들기도 했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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