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fashion] 밀라노·파리 2010 봄·여름 컬렉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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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실루엣…‘일터’로 돌아온 남성복

밀라노

내년 봄ㆍ여름엔 밝고 화려한 의상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남성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선 긍정적인 분위기의 옷으로 불황 탈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패션쇼가 많이 눈에 띄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보테가 베네타가 대표적인 예다. 페라가모의 수석 디자이너 마시밀리아노 조르네티는 선명한 오렌지 색상 슈트에 갈색 셔츠를 어울리게 하거나, 단정한 감색 정장에 오렌지색 넥타이와 벨트를 매치해 밝은 분위기의 옷차림을 완성시켰다. 보테가 베네타의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는 와인 색상과 오렌지색, 분홍 등 붉은 계열의 색부터 녹색과 베이지까지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고 그 위에 강렬한 프린트까지 더해 활력 넘치는 의상을 선보였다.

지난 몇 년간 패션쇼 무대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떠날 듯한 모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일할 때가 된 것 같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일하는 남자들을 위한 옷’을 주제로 한 컬렉션을 내놓았다. 덕분에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인 부드러운 실루엣의 슈트는 보다 실용적인 느낌을 갖게 됐다. “이번 컬렉션은 ‘2010년형 우아함’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는 게 아르마니의 설명이다. 한결 편안하고 넉넉하게 표현된 슈트들은 새로운 우아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돌체&가바나는 요즘처럼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남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덕목으로 ‘섹시함’을 강조했다. 마돈나가 세 번째로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브라질 출신의 모델 헤수스 루즈를 이번 시즌 아이콘으로 내세우면서 섹시함을 무기로 삼아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형 남성상을 구현해 냈다. 실크 소재 셔츠와 수영복이 조화를 이룬 차림, 광택 있는 소재를 사용해 80년대풍 실루엣으로 완성한 슈트들은 섹시함 그 자체였다.

(왼쪽 위부터)살바토레 페라가모, 돌체 & 가바나, 겐조 옴므, 조르지오 아르마니, 루이뷔통 모든사진=[APㆍAFPㆍ로이터=연합뉴스], 각 브랜드 제공

파리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상업화된 선견지명보다 대중이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내놓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경기 회복에 확신이 없어서인지 이번 컬렉션에선 파리 디자이너들도 실험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한 듯 보였다. 대부분의 파리 브랜드들이 당장에라도 입을 수 있는 옷, 누구나 입고 싶어할 만한 옷을 내놓았다.

현재 남성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2명의 젊은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와 크리스 반 아셰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인 티시는 모자이크 프린트, 별 모양의 금속 장식 등을 티셔츠에 달았고 목 높은 하이톱 운동화, 검투사 샌들처럼 젊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디올 옴므의 디자이너인 반 아셰는 넉넉한 품새의 재킷과 카디건으로 무대를 수놓았다. 전반적으로 실험적인 디자인보다는 바로 입을 만한 옷이 많았지만 속이 비치는 셔츠 위에 커다란 카디건을 입고 그 위에 깃 없는 슈트 재킷을 덧입는 등의 겹쳐 입기 방법에선 특유의 모험정신도 살아 있었다.

겐조의 수석 디자이너 안토니오 마라스는 프랑스 탐험가 사보르냥 드 브라자에게서 영감을 얻은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탐험가 룩을 발표했다. 더불어 물감이 번진 듯한 꽃무늬 프린트를 옷에 그려넣어 브랜드의 고유한 상징성도 살려냈다. 쇼의 피날레에선 모델들이 무대를 걸어 나오자 천장에 달려 있던 유리병에서 모래가 쏟아져 내려 관객을 놀라게 했다. “꿈을 버리지 않고 탐험에 매진하던 브라자의 열정적 삶에 대한 헌사였다”고 한다.

루이뷔통은 ‘뉴욕의 오토바이 배달부’를 컨셉트로 했다. 밑단을 걷어 올린 바지, 다양한 디자인의 메신저 백, 큼지막한 토트백, 편안한 느낌의 바이커 재킷 등이 무대를 수놓았다. 허벅지를 드러내는 짧은 반바지도 눈에 띄었다.

밀라노ㆍ파리=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redcat47@hotmail.com

과감한 란제리룩 … 프린트 화려한 여성복

밀라노

이번 시즌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한 패션 브랜드들은 밝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침체된 소비 욕구를 부활시키고자 노력한 듯 보인다.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서 불황에 대처할 파워풀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지난 시즌과는 달리 실험적인 요소는 자제하고 여성미를 강조한 실용적인 옷들을 대거 선보였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밝은 미래를 책임질 젊은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모노톤의 우아한 노선을 고집하던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보테가 베네타마저도 전에 없던 화려하고 실용적인 옷들을 내놓았다.

아르마니는 빨강·파랑·보라 등의 화려한 컬러 구성을 강조하며 꽃봉오리를 연상시키는 봉긋한 스커트와 캔디 컬러의 발레리나 슈즈로 젊은 여성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토머스 마이어 역시 빨강·노랑·연보라 등의 밝은 컬러를 곳곳에 배치하고 봉재선 없이 재단된 넉넉한 실루엣의 활동성이 강조된 옷을 제안했다. 특히 작업복을 연상시키는 저지 소재의 ‘커버 올’(위·아래가 붙은 작업복)이 돋보였다.

이번 컬렉션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럭셔리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스포츠 의류 요소를 긍정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이다. 점퍼 느낌의 풍성한 재킷, 다림질 없이 입을 수 있는 구김 셔츠, 트레이닝복 바지의 특징을 도입한 다양한 길이의 팬츠, 테니스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미니 스커트 등으로 차분한 일상복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구찌·질 샌더·프라다 컬렉션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인 프리다 지아니니는 스쿠버 다이빙, 스카이 다이빙 같은 역동적인 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당당하고 섹시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간결한 라인과 과감한 재단, 스카이 다이버들의 고정 장치를 응용한 금속 장식 등으로 완성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왼쪽 위부터)이상봉, 크리스찬 디올, 이자벨 마랑, 보테가 베네타, 레오나드 모든사진=[APㆍAFPㆍ로이터=연합뉴스], 각 브랜드 제공

파리

내년 봄·여름엔 특이한 소재를 쓴 화려한 프린트 의상에 주목해야 할 듯하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모두 독특한 소재 개발에 열을 올렸고, 여기에 봄·여름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경쾌한 무늬를 과감하게 넣은 옷을 주로 선보였다. 속옷처럼 보이는 겉옷, 일명 ‘란제리 룩’도 놓치지 말아야 할 트렌드다.

레오나드·이세이 미야케·이상봉·드리스 반 노튼은 프린트에 공을 들였다. 레오나드는 고급 실크에 각양각색의 화려한 프린트를 새겨 넣었고, 이세이 미야케는 아프리카 전통 문양을 딴 색채 조합에 힘을 쏟은 듯했다.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봉도 여러 가지 프린트를 넣은 드레스를 주로 선보였고 드리스 반 노튼 역시 아프리카와 인도의 전통 문양을 적절히 활용해서 봄·여름 여성복에선 밝고 경쾌한 무늬가 대세임을 실감케 했다.

이자벨 마랑은 짙은 분홍색 옷을 입은 모델에게 카무플라주(군용 전투복에 주로 쓰이는 무늬로 나뭇잎이나 풀잎, 흙색 등을 섞어 위장용으로 사용) 무늬의 부츠를 신겨 여성스러움과 힘 있는 전사의 이미지를 조화시켰다. ‘란제리 룩’에서도 이런 경향은 비슷했다.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는 어깨가 솟은 짧은 트렌치 코트 아래 속옷처럼 보이는 짧은 실크 스커트를 조화시켜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디자이너들은 소재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돌고 도는 유행에 맞춰 실루엣을 변형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였는지 어떡하면 더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소재를 발굴할까에 골몰한 듯 보였다. 겉으로 봐선 구별하기 힘든 소재를 쓴 디자이너들도 많았는데 장 폴 고티에의 선택이 눈에 띄었다. 데님으로 드레스를 만든 고티에는 이를 응용해 실크에 청바지 색과 무늬의 프린트를 도입하기도 했다.

파리=강승민 기자
밀라노=최자영 코스모폴리탄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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