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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샘] '거짓말' 주인공 이상현의 낭패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영화배우 이상현(45). 나이를 보면 중견배우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사도마조히즘(피가학적 음란증)이다, 등급보류다 해서 개봉도 되기전에 숱하게 입방아에 오른 영화 '거짓말' 의 주연이다.

말이 주연이지 영화 출연은 처음인 신인. 실제 이씨의 직업은 '거짓말' 의 주인공 '제이' 처럼 설치미술가다.

94년 '떠오르는 지구달' 프로젝트 등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그런 점이 평가 받아 그해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탔다.

이제 미술계에서는 이미 한자리를 차지한 '중견' 인 셈이다.

그가 영화를 한번 해보겠다고 한 것은 예술적 모험심의 발로였다.

이씨는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체험이자 자기 수정의 몸짓" 이라고 나름대로 '변신' 이유를 댔다.

그런 확고한 결심은 9살박이 딸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려도, 도발적 영화에 흔쾌히 출연할 수 있는 용기가 됐다.

그런 그가 요즘 "흔들린다" 고 한다.

이유는 영화 출연 이후 닥친 미술계의 따가운 눈총 때문. '변신' 은 좋았으나, 이상한 쪽으로 영화가 구설수에 오르다 보니 자신을 '기피인물' 쯤으로 여긴다는 게 이씨의 말. 미술계의 한 선배는 "그럴 줄 몰랐다" 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씨의 이같은 낭패감은 우리 예술계에 팽배한 '엄숙주의' 의 높은 벽에서 비롯됐다.

영화의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예술가의 운신을 지극히 자의적으로 곡해해 실험정신을 가로 막는 풍토. 가끔 예술가들의 이같은 속좁은 아량은 공권력이 개입한 예술의 '검열' 보다도 훨씬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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