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보호구역 제구실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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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6일 오전 8시30분 부산 서구 송도초등학교 정문 앞. 학생들이 경사 45도의 급경사 길에 있는 3곳의 횡단보도를 건너 힘겹게 등교하고 있다. 하지만 2개의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다. 과속방지 턱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마구 내달린다. 학생을 피해가야 할 차량이 오히려 횡단보도를 지나는 학생을 향해 빨리 비킬 것을 재촉하는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그러나 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편 표지판에는 이 곳이 '어린이보호구역' 임을 알리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여보자며 학교 앞 등에 만들어진 '어린이보호구역' (스쿨 존)이 제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

이 구역에서는 차량속도가 시속 30㎞이내로 제한된다. 주정차도 금지된다. 주출입문과 직접 연결된 도로에는노상주차장을 만들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이 같은 규정이 '헛구호' 에 그쳐 학생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최근 부산지역 어린이보호구역 실태를 점검한 결과 조사대상 26곳이 모두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신호등.과속방지 턱 등 교통시설물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무려 10곳에서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수영구 망미초등교 주변 전지역은 1.5m 정도 너비로 주차구획선을 그어 놓았다. 사상초등학교의 경우 이 구역을 관리해야할 구청까지 나서 노상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대구시내 유치원.초등학교 주변 2백20여곳에 어린이보호구역이 설정돼 있지만 곳곳에 노상 주차장이 설치돼 있고 과속방지 턱도 찾아보기 힘 들다.

대구 수성구 동성초등학교 옆 왕복 2차로 좁은 도로에 노상주차장이 설치돼 학생들은 등.하교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대구 수성구 황금초등학교 앞도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학생 통학길을 가로막고 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黃혜승 간사는 "대부분 어린이보호구역의 교통안전시설이 부족하고 통행을 위한 보.차도 구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김관종.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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