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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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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불힐이라는 관원이 있었다.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 중모라는 지역에서였다. 그곳 사대부들을 한데 모아 놓은 불힐은 커다란 가마솥을 옮겨다 놓도록 했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불힐은 “나를 따르지 않을 사람들은 이 솥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장작더미 위에서 펄펄 끓는 솥 안의 물. 그 누구도 감히 불힐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 전비(田卑)라는 인물은 달랐다. “정의롭게 죽는 사람은 도끼 밑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라며 그는 가마솥으로 다가섰다. 급기야 솥 안으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에 불힐은 그만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 전비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이어 정부에서 보낸 군대가 도착해 중모는 원래 상태를 되찾았다. 군대 사령관이 전비의 의로움을 기념코자 했다. 아주 후한 상을 내릴 작정. 그러나 전비는 이를 거절했다. “내가 상을 받는다면 의로움을 따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은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는가”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남쪽의 초(楚)나라로 떠난다. 그 말의 울림이 매우 크다. “내 행동으로 남에게 임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以行臨人, 不道)”는 말이다.

‘임인(臨人)’은 남에게 다가선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타인을 대하는 방법이다. 후한 상을 받고도 남을 만큼 자랑스러웠지만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남들에게 부담을 지워 준다면 넓고도 당당한 전비의 의로움은 빛을 잃었을지 모른다. 남에게 나는 무엇일까. 부담일까, 억압일까, 강요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군림(君臨)이다. 임금 또는 지배자의 자세로 남을 대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강요하는 자세다. 폭압적이고 강제적이어서 남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

유명 MC 김제동의 KBS 중도 하차를 보는 시각이 그렇다. 권력층의 사람 대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남을 누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선의 그악한 당쟁(黨爭)도 이런 인문적 환경에서 비롯했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나와 다른 남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 몸을 나투신 석가,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를 떠올릴 것도 없다. 제 스스로를 낮춰 남을 대하는 태도, 한자로 왕림(枉臨)이다. 군림 말고 왕림. 사람 모질게 대하는 한국 문화를 다시 생각해 본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