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노년시대] 2. 제2의 신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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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내가 저하고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집에 있더니 이제는 아예 아들네를 전전합니다. 첫 아들네 있다기에 찾아가면 둘째 아들네로 옮기고 둘째 아들네로 찾아가면 다시 첫 아들네로 가고…저도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 노인의 전화에 접수된 70세 할아버지의 하소연이다.

당신은 이런 노년을 원하는가. 천만에! '비바! 노년시대' 를 맞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성(性)관계를 포함한 행복한 부부관계다. 노년기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운데 자녀독립으로 부부 둘만 오롯이 남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제2의 신혼기' 를 경험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만큼 덫에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성들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친화력이 증가하고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져 바빠집니다.

반면 남성들은 소극적이 되고 아내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높아지지요.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부소장의 말. 과거의 영화(榮華)에 집착하는 할아버지들일수록 외부 또래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심리적 보상을 아내로부터 얻으려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자식 집에도, 친구와 놀러가지도 못 하게 하고 하루 세끼 밥상을 차리라는 요구를 하게됩니다. 문제는 더 이상 할머니들이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것이죠. " 아내가 젊었을 때부터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웠던 남편에게 불만스러 했다면 노년에 부부불화가 더 심화되면서 '황혼이혼' 도 불사하게 된다.

우리와 부부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 10여 년 전부터 퇴직 이혼이 급속히 늘어났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60대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당시의 30~40대는 이제 서서히 부부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대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40~50대 부부들이 휴일이면 륙색을 메고 하루 코스의 근교여행을 떠나거나 하이킹을 가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고 일본 주몬지여대 사회정보학부 오쿠야마 쇼지교수(노년사회학)는 말한다.

동양문화권인 싱가포르 역시 달라지고 있다. 노인활동회(SAGE)푸아콕티(瀋國治)회장은 "그간 전통적인 관념 때문에 가려졌던 노인의 로맨스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고 들려준다. 이 회 부설 노인문제연구소는 '준비된 노후' 등 책자를 발간해 노후 부부관계.성생활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노후 친밀감을 높이려면 ▶정기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충분히 대화하며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남편〓명령 아내〓복종이란 부부관계가 변화함을 받아들이며 ▶과거 잘못을 용서하고 긍정적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라고 충고한다.

실제 많은 노인들은 성욕을 느끼고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게 노인활동회 부설노인연구소의 전언. "성적인 능력은 쇠퇴하지만 그렇다고 성적인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전과 다르게' 성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이라고 설명한다.

'제2의 신혼' 은 '해로' 하는 노부부들 뿐 아니라 홀로된 노인에게도 다가온다. 건강한 노년기가 길어지는 만큼 노년기 이성교제와 재혼 등이 활발해지는 것. 매년 5월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노인미팅 행사를 갖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김정현씨는 "올해는 무려 7백 명이 신청했다" 며 "노인들의 이성에 대한 관심과 적극성은 젊은 사람들의 통념을 넘어선다" 고 들려준다.

서구 노인들의 경우 정신적.신체적으로 상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숨기려들지 않는다. 미국 서(西)시애틀시 노인전용콘도 '케니' 에 사는 마가렛 버드 할머니(73)는 첫남편이 암으로 죽은 뒤 60세에 재혼했다가 10년간 해로 끝에 사별한 이. "첫 남편이 죽고 나자 인생의 동반자가 필요했어요. 우리는 참 행복했지요. 같이 여행도 하고 아이들도 재혼한 남편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즐겁게 보냈답니다. "

아이들이 성장한 뒤라 양육문제로 다툴 일도 없어 상대에게 충실할 수 있었다는 게 노년기에 재혼한 이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러나 노년기 재혼을 반대하는 자식이 많은 것이 우리네 실정. "가장 큰 걸림돌은 재산문제" 라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지적한다. 배우자가 호적에 오르면 자녀의 상속분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때문. 따라서 본질적으로 '부모 재산은 부모의 것' 이라는 가치관을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강위원은 과도기적인 방안으로 자식들이 모두 입회한 가운데 재산문제.생활비.아플 때 대책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재혼계약서 작성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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