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정홍보처 업적 부풀리기 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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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청와대와 국정홍보처가 행정부처에 정부의 업적을 알리는 정책을 내놓고 언론의 비판 기사는 무조건 막으라고 요구하고 있어 각 부처의 공보관실이 '몸살' 을 앓고 있다.

건설교통부.교육부.노동부.보건복지부.환경부.행정자치부.기상청의 공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정홍보처는 최근 홍보처장 명의로 '2000년 예산안 홍보 협조' 업무연락 문서를 각 부처에 보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협조 요청과 관련' 이란 문구로 시작되는 이 문서는 중점 홍보 대상으로 ▶대선공약 이행예산 반영내역▶8.15 후속대책 수행예산 반영내역▶수혜 계층별 예산내역▶부처별 중점 추진사항 내역 등을 정한 뒤 2일까지 세부 홍보계획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일부 부처들은 이같은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요청에 반발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행정자치부와 건설교통부에 대통령의 8.15 경축사 후속대책으로 수방대책을 공동 발표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행자부.건교부가 "부처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 라며 반발, 발표 자체가 무산됐다.

이들 2개 부처 관계자들은 "정부 활동 생색내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국정홍보처의 업무 자세 때문에 행정부처의 포장만 화려하고 내용은 부실한 행정 정책이 양산될 위험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홍보처는 "정부 정책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겠다" 는 출범 취지와 달리 매주 정부부처로부터 홍보실적.계획을 보고받는 한편 정부관련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일일이 간섭, 설립 전 제기됐던 정부의 언론장악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최근 중앙일보에 '돈 잔치 신노사문화' 기사가 초판에 실리자 청와대와 국정홍보처 관계자가 최종판까지 제목 등을 변경시킬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며 "언론보도 내용을 가장 잘 아는 해당 부처를 제치고 내용도 정확히 모르는 국정홍보처가 '배놔라 감놔라' 하는 것은 월권이자 오만한 처사" 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행정부의 공보관계자들은 "정부에 불리한 언론 보도에 적극 대처하라는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닦달이 심해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만 나가도 해당 부처 공보 관계자들의 목이 날아갈 것 같은 분위기" 라고 불안해 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최근에는 국정홍보처가 부처별 홍보사업 우선 순위.홍보시기 등을 조정하고 있다" 며 "국정홍보처가 해당 부처의 업무특성과 중요순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국정홍보 효과 극대화만 노리는 과욕을 부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국정홍보처는 지난달 초 부처별로 국정 이슈 홍보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통보하는 등 부처간 공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청와대까지 정부부처 공보에 지나치게 간섭, 정부부처 내부에서 국정홍보처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청와대에 매주 공보 계획을 보고하는데 두뇌한국(BK)21 등과 같은 '큰 건' 을 내놓으라고 해 애를 먹는다" 고 전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조간신문 초판이 나오면 매일 청와대에 보고하고 해당 실무과 직원들은 보도경위.내용.조치계획 등 보고서를 만드느라 오전 1시까지 근무하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최근 차관회의에서 국정홍보처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대부분 참석자들이 '국정홍보처란 시어머니만 하나 더 늘었다' 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고 전했다.

사회부 행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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