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애니메이션, 미국시장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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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생 남의 집 일만 해주다가 버젓하게 마련한 내 집에서 처음으로 솜씨를 다해 요리를 만들어 내놓은 주부의 심정이 이럴까.

25년간 외국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을 해온 선우엔터테인먼트 강한영(52)대표가 창작 TV시리즈 '마일로의 대모험' 을 완성하고 제작발표회를 열게된 마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선우엔터테인먼트는 '알라딘' (디즈니) '심슨' (필름로만) '러그렛츠' (클라스키&추포) '딱따구리' (워너브라더즈)등 미국 굴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작품을 하청받아 기술력을 축적해왔다.

지금까지 '둘리의 배낭여행' '멀크와 스웽크' 등 국산물을 만들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TV용 창작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마일로의 대모험' 의 경우, 그 기획에서 완성까지의 단계가 매우 치밀하고 전략적이어서 창작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새겨볼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부터 전세계 수출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사실 30분물 한편당 1억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가는 현실에서 누구나 수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세계화' 라는 양념이 너무 부족했다.

이 작품은 국산 고추에 '치즈' 를 버무리고 '배달력' 까지 완비했다는 외형적 특성을 지닌다.

우선 캐릭터는 97년 제1회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 캐릭터부문 대상수상작인 '프프의 대모험' 이 모태다.

선우는 원작자 신동민씨와 10년간 판권을 계약하고 이를 프로그램 시장인 MIPTV와 MIPCOM등에 내놓아 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게 수정을 거듭했다.

주 시청층인 어린이들이 친숙하게 여기는 개미.나비.반딧불이 등 곤충들을 습성까지 연구,귀엽고 세련되게 그려냈다.

두번째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감안,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외국인 시나리오 작가를 대거 위촉하고 국내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접목했다.

특히 폭력성을 배제하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주력했다.

세번째로 올해 초 미국 프리멘탈사와 전세계 TV방영권 배급에 관한 합작계약을 체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자체 기획시리즈를 미국 네트워크에서 방영하도록 했다.

네번째는 부대사업. 캐릭터 라이센싱및 머천다이징을 위해 전문 업체인 '마루' 와 'A.L.I.' 를 선정,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를위해 보통 TV시리즈(25분 26편 기준)제작비의 3배 가까운 78억여원을 들였고 선녹음.디지털 방식의 첨단 기법으로 현재 4편까지 완성해 놓은 상태다.

'진인사(盡人事)후 대천명(待天命)' 이라 했다.

오는 10월29일 오후 KBS2TV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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