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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수난] 이렇게 죽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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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천연기념물 보호는 종 (種) 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이 다양성이 파괴되면 다음 차례는 인간의 멸종입니다. " 국립환경연구원 서민환 (徐敏桓) 박사는 천연기념물을 파괴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걱정했다.

◇ '먹거리' 된 천연기념물 = "2~3일 전 주문하면 원앙탕을 비닐팩에 포장해 드려요. 넣는 한약재에 따라 최고 수십만원까지 받습니다. "

지난 2일 전북 김제시의 한 원앙사육농장. 입구에 큼지막한 간판을 세워놓고 '원앙탕' 을 팔고 있던 농장주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했다.

전세계 2만여마리에 불과, 82년 천연기념물 327호로 지정된 희귀조류인 원앙은 사육종이라도 식용이 금지돼 있지만 이곳에서는 버젓이 '보신탕' 으로 둔갑해 팔리고 있다.

서울 꽃마을한방병원 강성길 (姜聲吉) 진료부장은 "금실 좋은 원앙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믿는 것 같은 데 중약 (中藥) 대사전에 따르면 원앙은 옴이나 치질에 약효가 있을 뿐" 이라고 말했다.

허가받은 박제제작.학술연구 외의 목적으로 천연기념물을 죽이면 문화재관리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원앙은 물론 황쏘가리.어름치 (259호.78년 지정) 등 천연기념물이 식.약용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

한국자생어종연구협회 이학영 (李學暎) 회장은 "여름에 동강을 찾을 때마다 사람들이 투망으로 어름치를 잡아 소금구이해 먹는 광경을 목격한다" 고 말했다.

경남 함안군 법수면 대평늪 (346호 84년 지정) 의 가시연꽃 열매도 당뇨에 특효라는 이유로 남채돼 남아나지 않는 실정이다.

◇ 관리 부재 = 전남 완도군 보길도 상록수림은 30여종의 상록 활엽수와 예송리 해수욕장의 검정자갈이 어울려 천혜의 풍광을 자랑했던 곳. 그러나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지금은 '피부병에 걸린' 듯 황폐해졌다.

보길도에 살던 조상들이 4백여년전 만들어 폭이 넓고 수목이 빽빽했던 방풍림은 최근 매년 30여만명씩 피서객이 몰려들어 파괴가 급속히 진행돼도 관리가 아예 안돼 왔다.

숲을 둘러싼 철책 안에는 횟집에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펌프.호스와 양식장비로 쓰레기장 같았으며 횟집.민박집 12채와 샤워장까지 들어서 있었다.

이 마을 주민 金모 (63) 씨는 "천만원 남짓 든 철책공사도 5년이나 걸려 그동안 피서객들이 숲에서 취사.야영을 해왔으니 얼마나 훼손됐겠느냐" 며 "군에선 관심도 없는 지 나와보지도 않는다" 고 꼬집었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방조어부림에는 샤워장.화장실이 들어서 있고 피서객들이 버젓이 텐트를 치고 야영하고 있었다.

경남 남해군 미조면 상록수림도 보호시설이 없어 외지인이 몰래 자생란을 캐간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충북 단양군청은 "주목 도벌을 막겠다" 며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3월 소백산 정상 주목군락 (244호) 옆에 초소를 세웠지만 취재팀이 지난달 말 확인방문했을 당시 초소는 유리창이 깨지고 마루바닥도 들떠 흉가처럼 방치돼 있었으며 상주 감시원도 없었다.

◇ 마구잡이 개발 = 다양한 식생으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된 경남 함안군 법수면 대평늪의 늪지식물도 주변 늪의 매립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대평늪과 수로로 연결된 상류의 진날늪 일부는 매립이 끝나 공장부지 조성공사가 한창이며 땅주인 姜모씨는 나머지 부분 매립신청을 했다 반려되자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또 인근 유전늪은 완전히 매립돼 흔적도 없어졌다.

함안환경보전협회 정경윤 (鄭炅潤.함안고교사) 사무국장은 "대평늪은 이미 오염됐는데 진날늪 매립마저 허용되면 대평늪은 죽은 웅덩이가 될 것" 이라고 걱정했다.

금강 하구언 서천쪽엔 바이킹 등 놀이시설과 자동차 전용극장을 갖춘 위락단지가 97년 완공돼 엄청난 소음과 불빛을 내 새들을 쫓아내고 있었으며 군산시는 하구언 담수호에 위락단지 '금강랜드' 건설을, 토지개발공사는 장항쪽 갯벌 5백여만평에 공단조성을 추진중이어서 철새 도래지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은 호텔이 들어서는 등 주변이 개발되면서 4월 한때만 얼 뿐 예전같은 결빙현상이 사라졌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매년 5~6월이면 희귀조 팔색조가 찾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경남 거제시 동부면 동백림은 숲을 가로지르는 포장도로가 난 뒤 팔색조가 자취를 감춰 천연기념물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됐다.

◇ 실종된 시민의식 = 경남 통영시 홍도의 괭이갈매기 번식지 (335호.82년 지정) 는 해마다 4~5월이면 2천5백여마리의 괭이갈매기로 장관을 이루지만 이 시기면 사진을 찍으려 1천여명이 몰려들어 서식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환경단체 '초록빛깔 사람들' 조순만 (趙淳萬) 회장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새들의 비상 (飛上) 장면을 찍기 위해 폭죽까지 터뜨린다" 며 어이없어했다.

전남 진도군 쌍계사 상록수림 (107호) 은 행락철이면 고기를 굽고 술을 먹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보호지역 내의 희귀식물을 불법 채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무원의 단속은 전혀 없다.

취재팀이 찾아간 지난달 28일에도 등산객 5명이 바위틈에서 자라는 콩란을 캐 가려다 인근 쌍계사 관계자에게 압수당했다.

기획취재팀 = 안성규.정철근.장혜수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제보전화 02 - 751 - 5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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