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줄였다 … 높였다 … 살아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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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BMW 독일 라이프치히 공장의 사무공간 위로 미완성 차체가 지나가고 있다. 이 공장은 생산라인과 사무실, 교육장, 실험실 등이 통합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직종 간 소통은 물론이고 사무직들이 생산품과 교감을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동대문 디자인파크의 설계자이기도 한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BMW 제공]

“현재 확실한 것은 앞으로가 불확실하다는 것뿐입니다. 효율을 높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난 8일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생산단지. 신차 발표회에서 만난 하랄드 크뤼거 BMW그룹 인사담당 이사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맞닥뜨린 현실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최근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지난달에는 판매량이 올 들어 처음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늘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긴장을 풀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요즘 라이프치히에는 활기가 돈다. 9월부터 공장의 생산목록에는 기존 1·3 시리즈에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X1’이 추가됐다. 다른 X 시리즈보다 차 값과 크기는 줄이고, 연비는 높인 신차다. 전 세계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이 공장의 생산량은 하루 600대에서 730대로 늘었다. 연초 이후 단축 근무를 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손이 모자라 다른 공장에서 200명을 파견근무 형태로 꿔왔다.

지난해 금융위기에서 비롯한 경기침체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다. 갑작스러운 쓰나미에 모두가 휩쓸렸지만 1년이 지나면서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명암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생사를 가른 기준은 ‘소형화’ 와 ‘고효율’이다. ‘고성능’을 내세우던 BMW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까지 앞다퉈 고연비·친환경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가차만 생산하는 BMW가 위기에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유연함에서 나왔다. 라이프치히 공장이 대표적 예다. 2005년부터 가동된 이 공장은 하마터면 체코에 들어설 뻔했다. 경영진의 마음을 돌리게 만든 건 노조의 양보였다. 노조는 탄력적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데 동의했다. 회사는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고, 대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는 식의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라이프치히 모델’은 위기를 넘기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판매가 급감하자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물론 2부제, 3부제의 근로형태도 탄력적으로 바꾸며 대응했다. 덕분에 지금껏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었다. 크뤼거 이사는 “인건비가 비싼 독일에서 계속 차를 생산하려면 위기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탄력적인 생산 체제가 필수 불가결하다”고 말했다.

변화에 대응하는 힘은 이 회사가 최근 선보인 차량들에서도 나타난다. 소형화 트렌드에 발맞춰 출시한 X1의 개발과 양산에는 3년이 걸렸다. 기존 차에 비해 절반 정도로 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홍보담당인 마크 하싱거는 “핵심부품을 어떤 차종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모듈화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자동차인 전기차 분야에도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현재 ‘미니’를 전기차로 만든 미니E를 600여 대 생산해 주요 도시에서 운행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13년께 도심형 전기차인 ‘메가시티 차량’을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주요 시장으로는 서울과 상하이가 거론된다.

에너지원인 ‘2차 전지’는 보쉬와 삼성SDI의 합작사인 SB리모티브가 공급한다. 엔진이 핵심인 기존 차와 달리 전기차의 핵심은 전지다. 이 때문에 전기차의 도입은 BMW 같은 업체들에는 큰 모험이다. 하지만 미니E의 개발 담당자인 피터 크람스는 “BMW의 역동적인 성능을 전기차에도 구현해 다른 업체와 차별화하겠다”고 말했다.

뮌헨·라이프치히=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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