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곱게 지는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32강전> ○ 황이중 7단 ● 허영호 7단

제6보(61~69)=야습을 감행했는데 오히려 상대의 복병에 걸려드는 얘기는 삼국지에도 숱하다. 상대가 대비하고 있을 때의 야습은 패배의 지름길이다. 지금 황이중 7단의 신세가 그러했다.

황이중은 흑이 61로 모는 수는 A의 돌파가 남아 두기 힘들다고 봤다. 그가 기대한 것은 ‘참고도 1’ 흑 1쪽으로 몰고 3으로 조여 가는 수였다. 백이 수 부족이지만 선수로 중앙을 끊고 12로 공격해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은 백이 한없이 두터워 흑이 망하는 코스. 바둑도 유리한 허영호는 아예 생각도 안 해 본 그림이다.

허영호 7단은 61로 몰더니 63, 65로 재차 몰아간다. 일단은 외길이어서 66까지 받으니 67, 69. 아주 쉬운 결정이다.

박영훈 9단은 “흑의 유일한 약점이던 중앙이 두텁게 변하면서 흑의 승리가 단번에 굳어졌다”고 말한다. 백은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싶었는데 그 코스가 오히려 ‘곱게 지는 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참고도 2’ 백1의 돌파는 시각적으로는 대단해 뵈지만 흑2로 받아 끝내기에 불과했다. 그걸 크게 본 것 자체가 틀렸다. 몸이 무겁고 감각은 둔해져 헛것이 보이는 날이 있다. 황이중은 2년 연속 4강에 오른 실력자치고는 터무니없이 두고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