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고교·대학 입시 협의기구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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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딩-동. 오전 6시30분에 나간 아이가 학교 수업과 학원 공부를 마친 뒤 자정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피곤하지. 어서 자라." "숙제해야 해요." 오전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한창 자라야 할 시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운동도 못하고,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많은 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빨리 풀도록 하는 일에 쏟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공부한 아이가 다른 나라 아이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 지금은 개인이나 국가나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해외 유학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학교 내신성적 반영 비중을 확대하고 수능 점수를 폐지해 등급제로 전환했다. 해방 이후 대입제도는 대략 따져봐도 15번은 바뀌었다. 그토록 긴 세월이 흐르고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으면 무엇인가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아이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한국 교육에 대한 절망과 한숨 소리는 깊어만 간다.

대입제도를 꼭 바꿔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다. 고교 학생들이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체력을 단련하고, 인격을 도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암기 위주의 공부에만 매달리게 되면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입시제도 개선의 또 다른 목표는 대학이 각각의 교육이념과 특성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학자를 양성하고자 하는 대학은 지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우리 사회의 중견 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대학은 그러한 자질과 소양을 갖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번의 대입제도 개선안을 통해 과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내신과 수능의 등급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고교와 대학 간의 협의체를 구성해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의 바람직한 학생선발제도가 정착되도록 하겠다는 방안이 담겨 있다. 그것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다.

고교와 대학 간의 협의체 구성을 통한 입시제도의 성공사례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 이러한 방향으로 8년에 걸쳐 입시정책을 수립하고 꾸준히 실천했다. 고교와 대학이 함께 모여 중.고교 시절에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상의한 뒤 고교 교육의 목표와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실천했다. 이 가운데는 깊이 있고 폭넓은 사고능력, 다양한 취미활동,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 사회적 감수성, 신체적 건강관리, 사회적 적응력 등이 포함돼 있다. 대학들은 과연 고등학교가 이러한 능력과 자질을 제대로 길러내고 있는지를 평가해 학생들을 선발했다. 이러한 입시제도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고교와 대학 간의 연계를 통한 입시제도 개선방안을 10여년에 걸쳐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입시제도 개선방안과 교육개발원의 연구를 연결지어 대학입시에 대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실천방안을 강구하기 바란다. 이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제발 입시제도를 바꾸지 말고 민족적 지혜를 모아 신중하게 입시정책을 수립해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해 가기를 바란다. 10년 뒤라도 좋으니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의미 있는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봉사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보람 있고 알찬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힘들며 시일이 걸린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아야 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