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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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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8월 4일자 신문에서 읽은, 지리산에서 실종 40시간 만에 구조된 초등학교 4학년 정희재군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난다. 소년은 밤이 돼 무서울 때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바위틈에서 잤다고 했다. 밤에 비가 내리자 "산에서 비 맞고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 침낭을 뒤집어쓴 채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고비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려 무사히 가족 품에 안긴 소년도 장하지만 평소 침낭이 든 무거운 배낭을 소년에게 메게 한 채 산길에 앞장세우고, 틈틈이 산행 요령과 바른 자세를 일깨워 준 그 아버지가 더 궁금했다.

인조 때 문신 조석윤(趙錫胤.1605~1654)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의 일이다.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어떤 사람이 달려와 아버지 조정호(趙廷虎)에게 아들이 노량진에서 썩은 배를 타는 것을 봤는데, 그 배가 중간에 파선돼 배에 탄 사람이 다 빠져 죽었다고 알려줬다. 아버지는 "우리 아이가 어찌 썩은 배를 탔겠나? 잘못 봤겠지"라며 태연자약했다. 배에 타는 것을 분명히 봤다고 해도 "기다려 보세"라며 침착했다.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과연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전후 사정을 묻자, 처음에 그 배를 타기는 했는데 위태로운 것을 보고 다른 배로 옮겨 탔다고 했다.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데도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 두 눈으로 직접 봤다는데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다. 아들이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위태로운 곳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는 평소 자신의 가르침을 어겼을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아버지의 신뢰를 아들은 믿음으로 지켜줬다.

산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던 40시간 동안 부모의 속이 속이었을까? 아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겉으로야 태연자약했어도 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소년에게는 평소 산행 때마다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어두운 밤의 불빛처럼 든든한 보호막이 됐다. 조석윤의 이야기에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듬직한 신뢰도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 믿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말씀이니까 옳고, 내 아들은 그럴 리 없다는 신뢰 속에는 오랜 기간 쌓이고 다져진 존경과 사랑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예전 조석윤의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부자간의 아름다운 신뢰를 산에서 실종됐던 소년의 기사에서 다시 만난 것이 참 기뻤다.

바야흐로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어른이 바른말을 해주면 새겨듣지 않고 코웃음을 친다. 자식도 부모의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용돈이나 듬뿍 주고 사달라는 물건 다 사주면 좋다 해도, 훈계라도 한마디 하려고 하면 금세 얼굴을 찡그린다. 하기야 부모가 자식에게 평소 좋은 표양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 말에 무슨 힘이 실릴 것이며, 그 훈계가 무슨 권위를 지닐 수 있겠는가?

내 자식이니까 귀엽고 내 새끼만은 특별나서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기가 아깝고, 땅에 굴러 흠집 하나 생길까 겁난다. 하지만 세상길은 지리산의 밤길만큼 험난하고, 썩은 배로 강을 건너는 것보다 위험하다. 자식을 아껴 아낌없이 재물을 주지만 정작 그것이 약이 아니라 독인 줄 모른다. '오냐오냐'하는 사이에 혼자 밤길을 마구 방황하다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썩은 배로 침몰할 줄은 생각지 못한다.

산 소년의 기사가 실린 그즈음 '아빠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마!'라고 했다고, 만취 상태에서 소동 끝에 자던 아들을 들쳐업고 나오다 함께 병원에 입원한 유명인 부부의 이야기도 신문에 연일 중계됐다. 나는 잠시 소년의 이야기에 기뻐하다가 어른들 얘기에 다시 답답해지고 말았다.

정 민 한양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