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LPG 6사 1조원 과징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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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공급 업체들의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해 “1조원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원회의에 제출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공정위는 다음 달 4일 전원회의를 열고 SK에너지·GS칼텍스·S-Oil·현대오일뱅크·E1·SK가스 등 6개 업체에 대한 최종 제재 를 결정할 방침이다. <본지 10월 9일자 2면>

이에 따라 올 7월 반도체칩 제조 업체 퀄컴에 부과한 2600억원의 과징금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이들 업체에 부과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6년여에 걸쳐 LPG 판매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조사해왔다. 공정위는 LPG 업체 가운데 리니언시(Leniency·자진 신고자 감면제) 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에 혐의 사실 입증에 자신이 있다는 입장이다. 리니언시란 기업들의 자진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불공정 행위를 자백한 기업에 대해 처벌·과징금 등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공정위 핵심 관계자는 “담합으로 판단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라며 “법 위반 기간이 길고, 관련 매출액이 상당해 과징금 규모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비·주거비 인상 등을 유발해 서민 부담을 가중시킨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6개 업체들의 LPG 공급가격 편차는 L당 0.79원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휘발유·경유는 같은 지역이라도 주유소마다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공정위는 국내 정유업체가 생산한 LPG와 수입한 LPG의 공급 가격이 비슷하게 형성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든 LPG와 수십만㎞ 떨어진 곳에서 들여온 LPG의 가격 차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법적 규제와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LPG 업체들이 과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고, 유통 구조가 수직 계열화돼 있는 점이 담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당 LPG 업체들은 공정위의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LPG 가격이 국제 가격에 연동돼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결정 구조가 투명하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LPG 업계에 따르면 현재 내수의 30%가량은 국내 업체들이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산되는 LPG로 공급하며, 나머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아람코가 가격을 결정해 통보하면, 수입가격과 환율·유통비용 등을 반영해 LPG 공급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한 LPG 업체의 임원은 “아람코가 내놓는 가격이 국내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끼리 가격을 조율하긴 힘들다”며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며, 법적 대응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전했다.

심의 중인 안건에 대해 공정위원장이 직접 나서 과징금 규모를 밝힌 점에 대해서도 이들 업체는 불만이다. 정호열 위원장은 8일 국정감사에서 LPG 업체들의 과징금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 정도 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전원회의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는데 위원장이 미리 제재 수위에 선을 그은 셈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처벌 수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전원회의에선 업체들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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