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오자와 만나 “우리 쩨쩨하게 굴지 말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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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방한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 의원은 또 일본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을 만나 "우리 서로 쩨쩨하게 굴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왼쪽)이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의 민주당 본부에서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과 대화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취임 이후 첫 번째 공식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그가 9일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것의 외교적 의미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번 회담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긴장 관계를 해소하고, 상호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양국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회담에서 양국의 우애(友愛)를 강조했다. 우애는 그의 인생·정치철학이다.

그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첫 양자 회담의 공식 방문국으로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저와 일본 국민이 귀국(한국)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관계가 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한국 문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총리가 된 지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하게 된 것도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의 한국 방문은 양자 차원의 첫 해외 방문”이라며 “이는 양국 관계가 그만큼 가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 등 현안을 긴밀한 협력관계로 풀어나가자고 약속했다.

유명환 장관·권철현 대사도 역할
하토야마 총리의 한국 방문은 외교전략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결실을 보려면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성숙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서 첫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게 청와대와 외교통상부의 분석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그런 생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그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74) 의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권철현 주일대사도 열심히 뛰었다.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이 의원은 하토야마 총리의 한국 방문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달 19일 일본 정계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7) 민주당 간사장을 만났다. 도쿄 롯폰기 힐스 아리나에서 열린 ‘한일 축제 한마당 2009 인(in) 도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 의원은 권철현 주일대사와 함께 오자와 간사장을 만나 “하토야마 총리가 방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오자와 간사장은 한국 의원단 중 이 의원만 만나길 원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오자와 간사장을 만나기 위해 다른 의원들보다 이른 시간에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이 의원은 일본 민주당의 최대 파벌을 이끄는 오자와 간사장을 한 시간가량 만났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이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국민은 하토야마 정부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다음 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한국을 먼저 공식 방문해 주면 좋겠다. 하토야마 총리가 취임 이후 첫 번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하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국 국민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을 욕한 적이 없다. 우린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무라야마 담화’(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발표한 것으로,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내용)를 계승한다고 말한 것을 평가한다. 앞으로 서로 쩨쩨하게 굴지 말자. 감정이 상한 일이 생기더라도 양국 대사를 소환하는 등의 요란을 떨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자.”

이날로 이 의원과 다섯 번째 만난 오자와 간사장은 “정말 잘해보자”고 했다 한다.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한다. 이후 오자와 간사장은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 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의원은 하토야마 총리가 신임하는 한 일본인 교수 측과도 접촉해 같은 논리를 폈다고 한다.

권 대사도 큰 역할을 했다고 외교부 관계자는 밝혔다. 그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 등과 만나 하토야마 총리의 한국 방문이 양국에 왜 유익한지 설명했다 한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지난달 초엔 하토야마 당시 민주당 대표를 만나 “민주당의 승리를 가장 먼저 축하한 외국 정상은 이명박 대통령”이라며 “일본에선 경사 때 제일 먼저 축하한 사람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만큼 총리로 취임하면 가장 먼저 한국을 방문해 달라”는 얘기도 했다는 게 외교부 측 전언이다. 일본 정부는 하토야마 총리의 방한을 긍정 검토하다 일각에서 “중국이 기분 나빠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걸 눈치 챈 유명환 장관은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해 오카다 외상과 하토야마 총리를 만났고, 방한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상득 “민심은 파도, 늘 조심해야”
이 의원은 6월 초 “정치 현안과 당무엔 관여하지 않겠다”며 2선으로의 후퇴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외교를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8월 그는 ‘자원외교 사절단’을 이끌고 페루·볼리비아·브라질 등 남미 3개국을 방문했다. 당시 동행한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이 의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페루 방문 때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에게서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이 잘 진행되도록 돕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책상엔 ‘전 세계 지역별 석유·가스 매장량 현황’ 등 자원 확보 문제와 관련된 보고서들이 놓여 있다. 이 의원은 8월 말 베이징에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북한 핵 문제 등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당시 그는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폐기 의지만 보이면 도와주겠다’고 한 만큼 그 참 뜻을 북한에 전달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외교소식통은 전했다. 이후 다이 위원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이 의원은 얼마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세상의 민심은 바다의 파도와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에 대해 묻자 그렇게 답하면서 “파도는 언제 칠지 모른다. 그러니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정치적으로 보이는 행보는 하지 않을 것이나 자원을 확보하는 일은 열심히 도우려 한다. 우리가 후진국의 자원개발에 참여해 많은 자원을 확보하면 자원의 수급, 국제가격의 변동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이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는 말도 했다. 그에게 남미 자원외교의 비화, 오자와 간사장과 만난 얘기 등을 해 달라고 했더니 “말하면 자랑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시비를 붙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르니 조용히 있겠다”고 했다.

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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