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충격적인 주사파 간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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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가정보원이 어제 발표한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수사결과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남한에서 스스로 태동한 주체사상 추종자들이 북한과 연결돼 간첩활동을 한 것이나, 이들과 북한공작원이 반잠수정을 타고 강화.제주도 해안과 북한땅을 제집 마당처럼 드나든 대목은 우리 안보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일깨워준다.

새 정부 들어 간첩조직이 적발돼 당국이 기자회견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의 대남적화 의지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인 동시에 국내에 또 다른 간첩조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도 드러냈다.

정부는 간첩에 대한 수사와 적발에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이 사건만 해도 우리 군이 격침한 북한간첩선에서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전모를 못 밝혀내거나 최소한 수사가 지연될 뻔하지 않았는가.

국정원은 또 북한이 과거와 달리 남한의 기성세대가 아닌 명문대 출신의 청년지식층을 표적삼아 포섭에 나섰고 연락수법도 인터넷 메일 등 이른바 '사이버 간첩' 방식을 병행했다고 밝혔다.

북한요원도 '국적세탁' 을 통해 제3국 국적으로 위장, 서울시내에 외국음식 전문점을 차리는 등 교묘한 정착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주모자로 밝혀진 김영환 (金永煥) 은 80년대에 '강철서신' 시리즈로 대학가 주체사상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또다른 혐의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북한공작원과 접선하는 등 간첩행위를 했고, 다른 사람은 포섭된 뒤 버젓이 월간지 기자로 취직해 활동한 것으로 발표됐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지하혁명당' 을 결성한 뒤 북한으로부터 받은 공작금으로 95년 지자체선거와 96년 총선 때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는 발표내용이다.

국민적 의혹이 쏠리는 대목인 만큼 당국은 선거자금 지원 대상자와 규모를 낱낱이 공개하고 상응한 조치를 해야할 것이다.

이번 간첩사건의 전개과정이나 등장인물에 충격적이고 새로운 것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적화통일이라는 북한의 의도는 종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북한이 남한 내 반북 (反北) 여론만 환기시키고 민족의 화해.통일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대남공작 방식을 계속하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 북한이 이처럼 간첩망을 조직할 수 있고 밀입북.남파를 손쉽게 할 수 있는 허점이 있는 한 그들은 남한적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남북대화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진보' 가 자생적인 '친북' 으로 변질되는 우리 대학가의 일부 풍토에 대해서도 기성세대가 경각심을 갖고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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