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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타계 조태일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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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7일 세상을 떠난 조태일 시인은 대지의 강인한 생명력을 영감으로 시대의 폭력에 당당히 맞서온 시세계로나, 단단한 체구에 말술을 마다않던 풍모로나 우리 문단의 '사나이' 로 기억된다.

어쩌면 그를 온전히 '사나이' 로 만든 것은 불의한 시대. 64년 등단 이후 69년 '시인' 지를 창간, 김지하.김준태.양성우 등을 발굴해냈던 시인의 올곧은 감성은 이후 시집 '식칼론' (1970) '국토' (1975) 등 시대와 싸우는 무기로 발전되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시 '국토서시' 중에서)

창작과비평사의 창비시선 제1권으로 펴낸 시집 '국토' 는 출간되자마자 긴급조치 위반으로 판금되었고, 시인은 이후 자유실천문인협회 간사활동 등으로 몇 차례 옥고를 치른다.

그러나 시인의 진정한 강인함은 불의에 대한 험난한 싸움을 조국 땅덩이라는 구체적 대상에 단단히 뿌리박은 서정으로 형상화한데서 평가받는다.

80년대 중반 펴낸 시선집 제목이 '연가 (戀歌)' 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듯, 국토에 대한 그의 일관된 애정은 90년대를 거치면서 한결 섬세한 시세계로 발전되었다.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가 복원한 유년의 향수와 자연친화적 서정은 이 땅 민초들의 보편적 고향으로서 자연에 대한 애정을 담아냈고, 이는 그의 시세계가 모성적 자연에 대한 안김으로 한단계 변모한 최근 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로 이어졌다.

"바람들은 천상 세살바기 어린아이다/내 바짓가랑이에, 소맷자락에, 머리카락에/매달려서 보채며 잡아끌며/한시도 가만 있질 못한다. //허리 굽혀 보아라/내 작은 눈길에도 가볍게 떨고 마는/작고 작은 들꽃들에게도/바람들은 매달려서 보채며 잡아끌며/한시도 가만 있질 못한다. " (시 '바람과 들꽃' 중에서)

시대와 세월을 넘어 국토와 연애했던 사나이가 병을 발견한 것은 겨우 50일전. 시인은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시 '풀씨' 중에서) 라고 노래했던 스스로의 싯귀처럼 풀꽃과 바람이 이끄는 세계로 갔다.

이후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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