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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성고 17년 만에 우승 축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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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신일고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17년 만에 대통령배를 품에 안은 동성고 선수들이 윤여국 감독을 들어올린 채 환호하고 있다. 동성고 선수들은 “다른 대회에서 우승할 때 감독님을 헹가래치는 사진이 신문에 나왔는데 우리 얼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오늘은 일부러 이런 포즈를 취했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광주 동성고가 17년 만에 은빛 대통령배에 입맞춤했다.

동성고는 4일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제39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대한야구협회 공동 주최, KT 후원) 결승에서 신일고에 0-1로 뒤지다 7회 말 2점을 뽑아 2-1로 역전승했다.

선발투수 한기주가 컨디션 난조로 2회 시작과 함께 마운드에서 내려간 가운데 일궈낸 값진 우승이었다. 동성고는 전신인 광주상고가 1988년 우승한 지 17년 만에 다시 대통령배를 품에 안았다. 56년 창단, 이 대회 직전까지 전국대회 9회 우승을 기록했던 동성고는 두 자릿수(10회) 우승에 진입했다.

지난달 30일 천안북일고와의 16강전에서 투구수 159개(완투), 1일 하루 쉰 뒤 2일 배재고와의 8강전에서 59개(4와 3분의 2이닝), 그리고 이튿날인 3일 군산상고와의 준결승전에서 130개(완투). 나흘간 22와 3분의 2이닝 동안 348개의 공을 던진 한기주는 결국 닷새 만에 무릎을 꿇었다. 1회 초 2개의 삼진을 잡는 등 삼자범퇴시킨 한기주였지만 최고구속이 시속 141㎞밖에 안 될 만큼 구위가 떨어져 있었다. 윤여국 동성고 감독은 결국 2회 초 첫 타자 모상기에 볼넷을 내준 한기주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한기주가 내준 볼넷은 신일고의 선취점이 됐다.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의 폭투 2개로 3루까지 진루한 모상기가 김현수의 외야플라이 때 홈을 밟았다.

7회까지는 치열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그러나 6회까지 호투하던 신일고 선발 남윤희가 7회 말 흔들리면서 투수전이 끝났다. 중전안타로 출루한 동성고 선두타자 김준열이 장준환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1루수 수비실책으로 출루한 대타 윤도경마저 박성남의 내야안타 때 홈인, 승부를 뒤집었다.

동성고는 8회 초 1사 2, 3루의 위기에 몰리자 1학년생 윤명준을 마무리로 내세웠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윤명준은 한기주의 대를 이을 '작은 괴물'이었다. 윤명준은 모상기와 주수범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워 8회를 마쳤고, 9회 초에도 삼진 2개를 포함해 삼자 범퇴시키며 우승의 수호신이 됐다.

최우수선수(MVP)는 3승을 기록한 한기주(동성고)가 선정됐다. 타격상은 14타수 8안타로 타율 0.571을 기록한 김현수(신일고)가 받았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MVP 투수 한기주

"끝까지 제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약간 아쉽지만 팀이 우승한 걸로 충분합니다."

대회 전부터 '초특급'으로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광주 동성고 투수 한기주(18). 최고 시속 152km의 광속구를 꽂으며 '괴물 투수'라는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하며 최우수 선수상(MVP)의 주인공이 됐다.

전날까지 모두 3경기에서 348개의 공을 던졌던 그는 신일고와의 결승전에서도 우승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선발을 자청했다. 1회를 무사히 마쳤지만 2회에 허리 통증을 느껴 마운드를 내려왔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본 심정을 묻자 "동료를 믿었어요. 팀 분위기가 좋아 결국 해낼 거라 확신했습니다"고 담담히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경기를 묻자 "천안북일고와의 경기를 결승전으로 생각하고 한 구 한 구 최선을 다해 던졌다"는 그는 "배재고와의 8강전에서 역전승을 이끌어 내준 동료가 특히 고마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부임한 김태원 코치는 한기주가 가장 존경하는 투수다. "현역 때 마운드에서 노히트 노런을 해내던 그 모습 그대로를 닮고 싶다"며 "실제로 김태원 코치 덕분에 투구 밸런스와 커브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최동원과 선동열을 능가한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선 "과연 내가 그런지 잘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광주에 내려가 충분히 생각한 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 윤여국 동성고 감독

광주 동성고 사령탑 윤여국(45) 감독은 동성고(광주상고 포함)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8년 모교인 동성고 감독에 부임, 이번 대통령배까지 전국대회 우승을 다섯 차례나 일궈냈다. 그가 광주상고 3학년이던 80년 봉황기 우승까지 합친다면 전국대회 10회 우승 중 여섯 차례를 경험한 것이다. 언더스로 투수였던 그는 80년 당시 여섯 경기에서 완투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윤 감독은 "묵묵히 잘 따라준 선수들에게 공을 돌린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한기주에 의존해 편하게 승리하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한기주가 강판당한 뒤 오히려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렇지만 역시 동성고의 힘은 한기주를 포함한 투수력으로 꼽았다. 그는 "한기주 외에도 2학년 양현종, 1학년 윤명준 등이 겨울에 시범경기를 많이 치러 서너 경기에는 등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을 키웠다"고 말했다.

평소 자율 훈련을 중시하는 윤 감독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선수들이 스스로 찾아서 하다 보니 잘 됐다"고 말했다.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배팅의 정확성과 번트, 그리고 주루 플레이 등 고교선수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본기다. 윤 감독은 한기주 입학 후 2003년 청룡기, 2004년 봉황기, 그리고 올해 대통령배를 품에 안았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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