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카드수수료 분쟁 파국은 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BC카드와 이마트 간의 대결로 촉발된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분쟁이 카드업계와 가맹점 사이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가맹점단체협의회에 홈쇼핑.이동통신.주유소.노래방까지 가세하면서 양측의 대립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카드사가 수수료 인상을 강행하면 일부 유통업체는 카드 가맹점 가입도 해제하겠다고 한다. 카드사들도 할 테면 해보라는 자세다. 정부는 시장에서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지 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이러다가 정말 우리 사회가 다시 현금사회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신용카드사는 외상으로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1개월 내외의 단기간에 무이자로 자금을 공여해 상품 거래를 원활하게 해준다. 외상대금 회수는 전적으로 카드사가 책임지게 된다. 카드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전산망 관리비용, 카드승인대행(VAN)사 수수료, 자금 공여를 위한 자금조달 비용, 외상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의 대손비용 등이다. 카드사들은 이를 계산하면 매출액의 4%가 넘는데, 현재 평균 2%밖에 받지 못하므로 밑지는 장사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가맹점들은 여태까지 가만있다가 왜 갑자기 수수료를 올리느냐고 반발한다. 카드업계가 연간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는 것은 현금서비스를 무리하게 해 대손이 크기 때문인데, 이를 가맹점에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또한 카드사에서 주장하는 수수료 원가도 자의적인 것으로 믿을 수 없으니 공동으로 산정해보자는 입장이다.

사실 그동안 카드사들이 일종의 대금업인 현금서비스를 주된 사업으로 해온 것은 정상이 아니다. 카드사 본연의 업무는 상품 신용판매 대행이다.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비중을 줄이고 신용판매 비중을 늘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카드사의 기형적인 영업으로 인해 그동안 가맹점들은 반사적 이익을 봤다. 왜냐하면 현금서비스 확대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가맹점 매상이 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맹점들은 현금서비스 위주 카드사 영업의 간접적인 수혜자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맹점이 카드사의 부실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수수료 분쟁의 원천은 현금서비스 사업에 눈이 먼 카드회사들이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정확한 계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책정한 데서 비롯된다. 국내에 신용카드가 처음 도입되면서 신용카드사들은 가맹점의 손실, 수익률 등에 대한 자료가 없어 국세청의 업종별 조세기준 등을 참조해 일률적으로 가맹점 수수료율을 책정했다.

만약 당시에 신용카드사들이 대손율을 보수적으로 산정해 원가에 반영하고 가맹점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면 지금과 같이 사태가 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수료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소액판매다. 신용카드사들에 따르면 5만원 미만 소액판매의 경우 결제할수록 손해가 크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수료 수입에 비해 카드승인비용.전산비용 등 고정비용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체 신용판매 금액은 줄어드는데, 소액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카드사의 손해 폭이 커진다고 한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 신용카드사의 조달금리, 대금 지급기간, 대손율, 가맹점 수수료를 국내의 자료와 면밀히 비교 분석해야 한다.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는 소액결제에 대해 가맹점이 일정 수수료를 부담토록 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신용카드는 소비자의 생활필수품이다.

따라서 수수료 분쟁으로 신용카드 사용에 제한을 받게 되면 소비자들의 후생은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신용카드사와 신용카드 가맹점은 상생의 관계다. 신용카드사는 신용카드 가맹점에서 수수료 수입을 얻고 신용카드 가맹점은 소비자의 외상구매에서 발생하는 리스크 부담을 카드사에 넘기면서 동시에 소비자의 구매력 증대로 인한 매출 증가의 이익을 얻는다. 신용카드 사용이 제약받게 되면 경기회복은 그만큼 지연돼 쌍방이 입는 손실은 더욱 커진다. 지금 수수료율을 놓고 벌이는 실랑이는 그동안 축적된 사용자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시장가격을 정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용카드사와 가맹점이 파국으로 치달아 서로 손해를 끼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