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특파원 동티모르 독립투표 현장르포 2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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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딜리 (동티모르) =진세근 특파원] 독립투표가 치러진 30일 동티모르의 투표소에는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뒤섞여 있었다.

지치고 주름진 얼굴, 터져나오는 기쁨을 어쩌지 못하는 얼굴, 술 냄새를 풍기며 악을 써대는 이, 그런 그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유엔투표참관단, 착잡하게 지켜보는 인도네시아인들…. 나흘전 민병대와 독립파간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던 클루훈 지역내 마사우 초등학교. 투표가 시작되기 1시간30분 전인 오전 4시30분부터 유권자들이 몰려들었다.

75년 인도네시아군 침공 당시 작은 아버지와 할머니를 잃었다는 도밍고스

카스트로 (18) 는 "드디어 메르테카 (자유) 다. 정말 너무 너무 기쁘다" 고 말했다.

남편과 다섯 아들을 모두 인도네시아군에게 잃었다는 알베르티나 (62) 할머니는 인터뷰 도중 자꾸만 눈물을 훔쳤다.

갖고 있던 휴지를 건네자 "아깝다" 며 치마단을 들어 코를 풀었다.

할머니는 한숨짓듯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고 말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로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얘기 같았다.

갓난 아이를 안고 투표에 참가한 로잘리나 다 실바 (20.여) 는 수줍게 "기쁘다" 는 말만 되뇌었다.

주위에 몰려 있던 젊은이들의 표정엔 웃음이 넘쳤다.

인도네시아군의 침공을 몸소 겪지 않아서일까. 웃고 박수치고 노래하고 마치 동네잔치 같다.

유엔참관단 일원으로 참가한 반둥내 와세 자란대학 학생인 페브리안다 유드 (21) 는 "투표는 매우 더디지만 아주 평화스럽다" 고 만족해 했다.

동티모르인들은 종이상자로 엮어놓은 기표소를 거쳐 플라스틱 통으로 만들어진 투표함에 조심스레 한표씩 밀어넣었다.

인도네시아 통합파가 주류를 이루는 판라이 클라파 마을의 투표소는 시종 험악했다.

독립이 결정될 경우 삶의 터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주민들은 악에 받친 듯했다.

'자치 쟁취' '독립 타도' 등의 구호가 자주 터져 나왔다.자치파 정당인 동티모르자치연합 (FPDK) 소속이라는 마르틴스 조아호 (24) 는 "독립이 결정된다면 많은 피가 흐를 것" 이라고 위협했다.

쇠막대를 휘두르며 구호를 외치던 어느 20대 청년은 취재진에게 "고! 고! (가라!가라!)" 라고 외쳤다. 살기등등한 그에게서 술냄새가 심하게 풍겨왔다.

외국 방송사의 TV카메라맨으로 일하는 저먼 민타푸라디아는 동티모르에 사는 인도네시아인이다.

그는 "독립은 아직 이르다" 고 잘라 말했다. "인도네시아의 실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 갖다준 개발과 번영은 종종 무시되고 있다" 는 게 저먼의 불만이다.

유엔동티모르파견단 (UNAMET)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인세뉴 마르티나 시몬 (32.여) 은 동티모르 독립에 대해 "50대 50" 이라고 말했다.

찬성.반대가 반반이란 얘기다.

그러나 무게는 못마땅하다는 쪽에 쏠려 있었다.

동티모르와 전세계가 인도네시아의 '선행' 은 철저히 무시한 채 '악행' 만 강조하고 있다고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들의 시선이 모두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내 민주재야단체인 '헌법개정을 위한 인도네시아연합' 소속 사디킨 욜비 (54) 사무총장은 "인도네시아의 군부독재.제도적 부패는 동티모르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민주세력들도 똑같이 박해했다" 고 강조했다.

동티모르 독립은 전세계적인 '반독재.반외세 투쟁' 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티모르 일지]

▶75년 7월 포르투갈, 78년부터 동티모르 식민통치 종료키로 선언

▶75년 12월 인니군 침공

▶76년 7월 인니, 동티모르 합병. 유엔은 합병 비난

▶79년 1월 동티모르 저항군 지도자로 샤나나 구스마오 등장 (92년 체포) ▶96년 12월 독립운동 지도자 주제 라모스 오르타, 카를로스 벨로 주교 노벨 평화상 수상

▶98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 사임

▶99년 1월 인니, 자치 거부하면 동티모르 독립 시사

▶99년 4월 유엔.포르투갈.인니, 동티모르 독립투표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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