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워크아웃 첫날…금융창구.해외채권단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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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12개 대우 계열사 협력업체들은 정부와 금융기관이 발표한 지원방안에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으나 막상 27일 지원 첫날 창구를 찾은 업체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이 대우 회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사장단 모임을 갖고 채권단에 적극 협조키로 결의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있는 외국 금융기관들은 "대우 자금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협의를 계속하겠다" 면서 협조의사를 시사했다.

그러나 노조가 대규모 인원감축을 우려, 감원 반대성명을 내는 등 직원 동요는 심상치 않은 상태다.

◇ 협력사 신용경색 여전 = 첫날이긴 하지만 27일 은행창구의 대우어음 할인.결제 기피현상은 여전했고, 수출업무 관련 신용장 (LC) 개설.해외수주 선수금 환급보증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우자동차 1차 하청업체인 N사 (인천 소재) 는 정부지원 대책을 믿고 어음할인용 신용보증서를 끊으려고 보증기관 창구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이 회사 대표는 "대우는 과보증 상태라 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며 "설사 보증이 된다 해도 한도가 5억원이라 대우어음 규모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많은 1차 협력업체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은행에서는 '이번 것은 해주겠지만 다음부터는 대우어음을 갖고 와도 할인해줄 수 없다' 고 통보했다" 고 덧붙였다.

월 15억원 가량 대우자동차 어음을 받아온 또 다른 협력업체 H사의 대표도 "거래은행이 꼼짝도 안한다" 고 호소했다.

30년간 대우전자와 거래해온 S사는 지난 13일부터 만기가 된 대우전자 어음 15억원어치를 은행에서 결제받지 못해 부도 직전 상황이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회사 관계자가 전했다.

대우와 협력업체들은 ▶해외 구매자 발행 마스타 LC에 기초한 로컬 LC 개설 ▶해외 수주에 대한 이행보증.선수금 환급보증 ▶수출용 원자재 수입을 위한 LC 개설 등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대우전자 협력업체협의회 부회장인 홍범기 신성화학 사장은 "더이상 시간이 없다" 면서 "금융당국이 대책만 발표할 게 아니라 현장을 보다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 해외채권단 움직임 = 해외 채권단은 당초 27일로 예정됐던 실무협의를 상황파악이 끝난 뒤로 미루자고 대우측에 통보하며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하겠다" 고 밝혔다.

대우측은 이와관련, 해외 채권단 역시 워크아웃 결정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데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는 만큼 채무유예나 상환연장 협상에서 다소 유리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우측은 채권단을 설득, 원금상환은 유예하는 대신 이자만 물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 국제금융부 관계자는 "한달 평균 지급되는 이자액은 평균 4천억~5천억원 정도" 라며 "아직 이자까지 지급하지 못할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았다" 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해외 채권단들이 최근 그룹을 사실상 부도 (디폴트) 상황으로 간주, 상환이자를 리보 (런던은행간 금리) 보다 1%포인트 정도 높게 요구하고 있으나 불가 입장을 고수 중" 이라고 덧붙였다.

◇ 동요하는 종업원들 = 전자 등 주력 계열사 사장들은 이날 사내 전산망을 통해 동요 방지를 요청하는 담화문을 올렸다.

그러나 임직원들은 인력감축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자 등 일부 계열사들은 이날까지도 예정된 월급 지급이 미뤄지고 있어 불안해하는 분위기. 25개 대우계열사가 소속된 대우그룹노조협의회 (대노협) 는 성명을 내고 "채권단에서 또다시 고용조정에 나설 경우 생존권 차원에서 총력투쟁도 불사하겠다" 는 강경 입장을 천명했다.

◇ 워크아웃에서 배제된 계열사 움직임 = 대우기전.대우모터공업 등 워크아웃 대상에서 빠진 계열사들은 대부분 계열분리 또는 매각이 예정돼 있는 만큼 담담하다는 입장.

매각협상이 진행 중인 대우정보시스템의 한 관계자는 "회사가 대우에서 계열분리된 데다 그룹에서 받을 미수금 회수와 매각협상이 끝나면 한결 경영이 수월해질 것" 이라고 홀가분해했다.

그러나 자력갱생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상당수 있어 이들 중 일부는 결국 법정관리.청산 등을 통해 정리될 운명을 맞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 역시 채권단에 의해 대대적인 조직개편 등이 뒤따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수호.김종윤.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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