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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⑫·끝 강원도 막국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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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란 ‘금방, 바로 뽑은 국수’라는 뜻이다. 또 막국수 하면 으레 춘천이 떠오른다. 하지만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음식이고, 냉면처럼 이북 음식이다.

‘오리지널’ 막국수는 비빔장 양념에 비비고 육수를 부어 먹는 춘천식과는 다르다. 육수 대신 동치미에 말아 먹는다. 양양·속초·고성 등지에선 동치미 맛으로 먹는 막국수가 흔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북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하다 보니 여전히 오리지널이 강세다.

지금은 군사공항으로 변한 속초 공항을 지나 진전사 방면으로 4㎞ 남짓 들어가면 ‘영광정 메밀국수’가 나온다. 3대째 막국수를 내는 집이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이라서 이름도 윤함흥인 할머니와 며느리 임정자(68)씨가 1974년 함께 개업해 손주 며느리 봉미경(45)·이순화(35)씨까지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약속 날짜를 정하고 찾아갔다. 한데 이럴 수가. 그 사이 올해 93세인 윤 할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결국 막 삼우제를 끝낸 임정자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임 할머니도 함경도 단천 출신으로 해방 후 내려와 정착한 곳이 지금 이곳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국수를 뽑으니 메밀 면이 끈기가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 손으로 하다 보니 국수가 뚝뚝 끊어지고 잘 퍼져서 쉽지 않았어…. 그래서 메밀묵을 국수처럼 채 썰어서 동치미에 말아 먹는 일이 많았지.”

임 할머니는 막국수의 핵심은 메밀국수가 아니라 동치미라고 했다. 메밀 면은 어느 집에서 뽑아도 별 차이가 없지만 동치미는 그 집만의 특색이 묻어난단다. 동치미에 쏟는 정성이 100이라면 메밀 면은 10 정도라고 했다.

임 할머니는 “김장철인 11월에 동치미를 담근다”고 했다. 식당 앞 밭에서 뽑은 무를 깨끗이 씻은 후 소금물에 담그고, 마늘·생강·양파를 넣는다. 배는 넣지 않고, 잡내를 잡기 위해 제피나무(초피나무)를 넣는 게 전부다. 그 다음이 문제다. 더우면 군내가 나고 추우면 무가 얼어서 물러지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임 할머니는 “영상 5도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손주 돌보듯 매일 매일 저장고에 들러 얼지 않도록 하고 맛을 보며 정성을 들인다”고 밝혔다. 11월에 담근 동치미는 보통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 여름 장사용으로는 봄에 나는 햇무로 담그고, 가을용으로는 여름에 다시 한번 담근다.

식당 뒤쪽의 동치미 저장고는 20㎡(약 6평) 정도 되는데 지름이 1m쯤 되는 독이 12개가 있다. 여름에 담근 동치미가 3개에 가득하고 맛을 보니 ‘톡 쏘는 듯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느껴진다. 1개월 이상 숙성한 후 사용한다.

이에 비해 ‘춘천식’ 막국수에는 육수가 나온다. 춘천시내에 있는 ‘남부 막국수’는 돼지 뼈를 우려낸 육수를 쓴다. 40년 역사의 ‘원조 샘밭 막국수’는 소 뼈를 12시간가량 고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시원하기보다 구수하다. 남부 막국수 윤성순(75) 할머니는 “약사동 옛 춘천교도소 근처에 막국수 집이 몇 곳 있었는데 그곳의 할아버지로부터 육수 내는 법을 배웠다. 춘천 막국수는 육수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메밀의 고장’ 평창 막국수는 과일로 국물을 만든다. 봉평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막국수’ 최애숙(49) 사장은 “사과와 배·양파 등을 갈아 즙을 내 5시간 정도 숙성시킨다”고 밝혔다. 국물 맛은 시원하면서도 새콤달콤하다.

막국수는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춘천과 인근의 홍천·양구에서는 막국수라고 한다. 양양 등 영동지방에서는 메밀국수로 부른다. 임정자 할머니는 “원래는 막국수였지. 그런데 2000년에 오인택 양양군수가 ‘막국수라고 하면 춘천이 떠오르니 앞으로 메밀국수로 부르자’고 해서 상호를 바꿨다”고 말했다. 평창에서도 메밀국수라고 한다.

막국수는 원래 겨울철 음식이었다. 메밀 수확기가 10~11월 초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철 음식으로 변했다. 임정자 할머니는 “얼음이 살짝 언 동치미에 막국수를 말아 먹으면 명치 끝까지 시원함이 느껴진다”며 “그 맛을 느끼기엔 겨울보단 여름이 더 낫다”고 했다.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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