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소주세 100%인상-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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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가 현행 소주세율 (35%) 을 위스키 수준 (1백%) 으로 인상한다고 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대폭인상은 소득분배를 왜곡하고 서민의 세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주장과,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대폭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 잘못됐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공법학

최근 정부가 소주세율을 수입증류주의 세율 1백%와 같게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소주세율을 1백%로 올리자는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소주의 현행세율이 너무 낮아 지나친 음주를 유발하고 청소년이 쉽게 음주문화에 접하게 되는 등 사회적 폐해가 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다한 음주로 인한 폐해는 음주문화의 개선과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소주에 국한된 세율 인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단견에 불과하다.

특히 소주와 같은 대중주는 가격에 대한 수요탄력성이 작기 때문에 세율이 인상돼도 소비는 줄지 않을 것이므로 세수증대 효과만 가져올 것이다.

결국 소주세율의 인상은 음주의 사회적 병폐를 줄이는 기능보다 세수증대와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우리 경제가 WTO체제로 편입된 이상 국내 주세율의 조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의 다른 수출품에 대한 보복관세 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조건 현행 소주세율을 고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이 우리 경제가 WTO체제에서 지불해야 하는 일종의 비용이라면 그 비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주세율 인상에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사항은 조세법의 대원칙인 조세평등의 원칙이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세가 간접세의 하나이긴 하지만 현행 주세법은 주종에 따라 차등적인 세율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간접세인 주세의 경우에도 주종에 따라 이를 소비하는 계층과 경제적 담세능력의 차이를 고려해 보다 고가의 술에는 높은 세율을, 보다 저가의 술에는 저세율로 과세해 가능한 한 조세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WTO의 이행요구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세율인상은 "법만 있으면 과세하겠다" 는 과세만능주의에 불과하다.

◇ 대안없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같은 증류주인 우리 소주와 수입 양주에 대한 세율을 차별하지 말라는 미국.유럽연합 (EU) 의 주장이나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내년 1월말까지 이 둘간의 차별을 없애려는 세계무역기구 (WTO) 의 권고는 한 나라의 술문화를 무시한 매우 기분 나쁜 행위다.

서민 대중들이 마시는 싸구려 대중주인 소주와 비싼 고급주인 양주를 어떻게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것은 대중주인 소주에 대한 세율을 높이기가 어려울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용, 양주에 대한 세율을 낮추게 하려는 그들의 간교한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소주업계의 대응이 미진했는지, 또는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부족했는지 WTO 주세패널과 상소심에서 우리가 패배했고 국제규범에 따라 소주와 양주간의 세율을 같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 중 하나다.

술로 인한 청소년문제, 범죄 증가, 알콜중독으로 인한 질병 및 사망,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 등 사회비용의 증가는 주세율을 전반적으로 높일 수밖에 없게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소주와 양주의 세율을 같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소주세율을 그대로 두고 양주세율을 낮추든지, 양주세율은 그대로 두고 소주세율을 높이든지, 또는 어떤 중간수준으로 소주세율을 높이고 양주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양주세율의 인하를 보면 이미 세차례에 걸쳐 낮춰준 양주세율을 또 낮춘다는 것은 국제수지나 국민건강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폭탄주를 하면서 양주를 물마시듯 하는 우리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WTO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 또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양주세율은 그대로 두고 소주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소주세율을 1백%로 높이느냐, 또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무역 보복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단 70~80% 정도 올리고 소주업계에 적용할 시간을 주느냐 하는 선택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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