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 따라잡기] 다게스탄.체첸 사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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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지역.역사 =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산맥 주변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체첸 ▶다게스탄 ▶잉구슈^남.북 오세티야 등이 모여 있다.

영어로 코카서스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옛소련 영토. 이중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는 91년 소련 붕괴후 주권을 회복,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 (CIS) 을 구성하고 있으며 체첸과 다게스탄 등은 러시아내 자치공화국이다.

카프카스 지역의 끝없는 갈등 원인은 복잡한 민족.문화적 배경. 50여개 민족, 30~40개의 언어, 이슬람교.개신교.유대교.그리스정교.아르메니아정교 등이 혼재하는 '인종.종교.언어의 전시장' 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여건으로 항상 외세침략에 시달렸다.

7세기 아랍권 지배, 10세기 셀주크투르크, 13세기 몽골, 16세기 오스만투르크, 18세기부터는 제정러시아.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였다.

◇ 체첸 = 경기도만한 면적에 인구 1백20여만명. 체첸족.잉구슈족.러시아인 등 3대 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체첸족.잉구슈족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제정러시아의 식민지배에 뿌리깊은 반감을 가졌던 이들은 1817년 카프카스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코사크인' 의 소재가 바로 체첸족의 대 (對) 러시아 항전이다.

소련은 체첸족을 무마하기 위해 36년 체첸을 자치주에서 자치공화국으로 승격시켰다.

하지만 체첸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협조했고 44년 스탈린은 괘씸죄를 적용, 공화국을 해체시키고 체첸족 4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추방했다.

57년 흐루시초프의 복권 조치로 체첸족은 귀향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3분의1에 불과했다.

◇ 체첸 사태 = 소련 해체와 함께 체첸의 독립투쟁은 다시 불붙었다.

9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두다예프는 그해 11월 독립을 선포했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러시아는 94년 무력개입을 단행했다.

카프카스 전지역에 독립 열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95년 러시아군이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장악, 위성정부를 세웠지만 두다예프가 이끄는 반군은 산악지역에서 게릴라 투쟁을 계속했다.

양측에서 막대한 사상자가 속출한 끝에 96년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이에 따라 2001년까지 과도기간을 갖고 체첸의 장래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러시아군이 체첸에 주둔하지 못하게 되는 등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의 완전 패배였다.

◇ 다게스탄 사태 = 남한보다 약간 작은 면적에 인구 2백여만명. 체첸과 달리 언어도 각각인 32개의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있어 독립 열기를 하나로 결집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게스탄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인 '와하비 운동' 세력은 체첸의 이슬람 반군들과 깊은 유대를 갖고 다게스탄과 체첸을 이슬람 독립국가로 병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체첸 반군이 지난 7일 다게스탄 국경을 넘어들어가자 와하비 운동이 중심이 된 다게스탄의 비공식적 이슬람 행정부 슈라는 이들과 함께 '다게스탄 이슬람공화국 독립' 을 선언했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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