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신문 1946~50] 경악…컴퓨터 출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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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46년 2월 15일 필라델피아]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IBM사는 이날 세계 최초로 에니악 (ENIAC) 이라는 고도로 정교한 전자계산기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1만8천8백개의 진공관 속 전자들이 연산을 수행하는 이 전자계산기는 1초에 5천번의 덧셈이 가능한 '가공할' 능력을 갖고 있다.

총 무게 30t인 이 장치는 길이가 펼쳐놓으면 자그마치 45m가량으로 교실 2개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다.

또 1백20㎿라는 엄청난 전기를 소모, 이날 가동식 때 펜실베이니아주 가로등 일부가 희미해졌다는 목격자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빠른 기계식 계산기는 하버드대가 제작한 것인데 기껏해야 초당 50번의 더하기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에니악의 출현은 전세계 과학계에 혁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에니악은 당초 미국 육군이 미사일의 탄도계산을 위해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개발비로 48만달러 이상 투자됐다.

이 컴퓨터의 개발에는 이 대학의 젊은 과학도인 존 모클리 (32) 와 프레스퍼 에커트 (23)가 결정적 공헌을 했다.

김창엽 기자

◇ 그후…사회 전반에 정보혁명의 물결

컴퓨터는 '계산기' 라는 뜻대로 원래 계산기능을 위해 발명된 기계다.

특히 2차대전중 암호해독, 미사일 탄도계산, 핵폭발과정의 수리적 파악 등 군사적 수요를 종래의 기계식 계산기로 채울 수 없게 됨에 따라 전자계산기 개발이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전자계산기는 상상밖의 폭발적 용량확장을 통해 단순한 계산을 넘어서는 여러가지 기능을 갖춤으로써 인류문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보의 축적과 유통수단으로 자리잡음으로써 문자와 인쇄술의 발명에 이어 제3의 정보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80년대 이후 개인용컴퓨터 (PC) 의 보급은 인류의 생활양태를 뒤바꾸게 된다.

상거래와 여러가지 사회활동, 개인의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에 의존하는 생활양태가 하루가 다르게 범위를 넓혀가는 가운데 정치제도에서도 컴퓨터통신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의 실현가능성이 진지한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컴퓨터를 탄생시킨 어버이라 할 근대과학마저 컴퓨터의 존재로 인해 성격을 바꿀 처지에 놓인다.

근대과학의 열쇠는 자연현상을 단순화시키는 데 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을 비롯해 본질적으로 복잡한 현상에 대해서는 근대과학의 접근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컴퓨터의 용량은 복잡성에의 접근로를 넓혀주고 있다.

인조인간의 논의도 그 때문에 갈수록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제 '인간' 의 정체성마저 컴퓨터 앞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기다리는 단계에 와 있다.

김기협 문화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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