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재경장관 본지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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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봉균 (康奉均) 재정경제부장관은 본지 박태욱 (朴泰昱) 경제부장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의 재벌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수석 경제부처 장관으로서 현 정부의 재벌개혁 구상을 허심탄회하게 피력했다.

康장관은 최근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방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데 아쉬움을 표시하고, 재벌개혁은 지난해 재계와 합의한 5대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돼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재벌해체' 쪽으로 정책이 급선회했다는 해석까지 팽배해있다. 정부 재벌정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분명 해체는 아니다. 재벌정책에 어떤 선회도 없다. 정부 재벌정책의 일관된 방향은 족벌식.선단식 경영방식을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재벌 스스로도 지금 방식으론 존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과거 정권의 재벌정책은 정부가 강요하고 재벌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의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다.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정부가 재벌 말살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는 재벌의 실체가 이건희 (李健熙) 삼성회장이나 김우중 (金宇中) 대우회장이라고 보지 않는다.

재벌총수뿐 아니라 우수한 전문경영인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중소 협력업체, 소액 주주들 모두가 포함된 것이 재벌의 실체다.

이들 모두가 창의적이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을 갖추자는 게 바로 정부 재벌정책의 실체다. "

- 그렇다면 재벌개혁 이후 재벌은 어떤 모습이 되나.

"먼저 지금 같은 선단식 경영체제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재벌은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핵심기업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변신할 것이다.

둘째, 과다한 부채를 털어내고 금융기관들의 신뢰를 받는 낮은 부채의 기업군이 된다.

셋째, 족벌경영 방식이 사라지고 소액주주나 사외이사 등의 감시 아래 기업조직 안에 견제와 균형이 확립될 것이다.

경영이 투명해지면서 불공정 내부거래나 분식결산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과거 재벌 성장의 주요 수단이었던 관치금융.정경유착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

- 최근 공적자금을 투입한 부실기업 대주주의 퇴진을 명문화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는데.

"배임이나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대주주는 재벌개혁과 관계없이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또 공적자금 투입이 결정되는 기업에 대해선 채권단이 들어가 채무연장.출자전환 등 부채정리의 책임을 떠안은 후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경영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것이 전부다. 어떻게 법이나 제도로 대주주의 퇴진을 명문화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난센스다. 정치적 시각에서 자꾸 재벌정책을 추측하고 색깔을 칠하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 그러면 재벌개혁 이후 재벌 오너는 어떻게 되나.

"지분을 많이 가진 대주주 자격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면 된다. 지분권을 행사해 경영책임을 맡는 것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다만 대표이사로 등재하고 당당히 경영해야 한다. 법적 실체도 없는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 그럼에도 정부의 재벌정책에 자꾸 혼선이 빚어지는 것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해 이후 정부가 시행한 각종 경제개혁 정책 중 재벌개혁 쪽이 제일 속도가 빠르고 폭넓게 진행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부가 어느 쪽보다 재벌개혁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채권은행단과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부개입으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특정 재벌들의 운명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

- 최근 김태동 (金泰東) 씨의 발언파문이 겹쳐 야당에서는 정부 재벌정책을 '사회주의적' 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다. 그 사람도 개인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 사람은 경제정책에 참여하는 각료가 아니다. 그 정도로 이해해야지 자꾸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다. '사회주의적' 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이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사회주의와 정반대인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부의 재벌정책은 기존에 해왔고 (재계와 합의한 5대 원칙) , 앞으로 하겠다고 한 것 (8.15 경축사의 재벌개혁 관련 세 가지) 이 전부다. "

- 김태동씨 등 '다른 생각' 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康장관이 '재벌 비호세력' 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나는 재벌을 비호하지 않지만 혐오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

- 지금까지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평가하나. 앞으로의 전망은.

"제일 큰 문제인 대우는 채권단과 새로운 특별약정을 체결해 실천을 남겨두고 있다. 삼성도 자동차의 부채문제가 매듭 단계에 와있고 이제 부산공장 처리 정도가 남은 숙제다. 현대에 대해 부채가 너무 많지 않으냐고 우려하는 소리가 높지만 기아그룹과 LG반도체를 인수한 특수요인을 감안해줘야 한다.

현재 부채 축소와 자본 확충작업이 실행되고 있어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LG와 SK는 별 문제가 없다. "

- 마지막으로 정부의 재벌정책 방향을 정리한다면.

"재벌정책이 시장경제원리에서 벗어나 정치권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일부 평가에 대한 반론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현재 재벌개혁은 필요한 여러 법을 고쳐 법에 따라 실행되고 있다.

법은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해줬다. 돈 빌려준 채권단이 기업에 부채상환약정을 요구하고, 이를 어길 때 대출을 규제하는 것은 세계 어느 선진국에도 있는 일이다. 현재 정부는 재벌개혁을 제도적 틀을 갖고 합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또 채권단을 통해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실행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나 불이익은 절대 없다. "

정리 =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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