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초·신라관·신라촌 … 중국에 ‘장보고 네트워크’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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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 펑라이(逢萊)시 첸화스룽(前花市弄) 23번지. 대지 면적 약 600㎡(약 180평)짜리 낡은 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장보고 때 한국식 호텔인 ‘신라관’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장보고 연구가인 숭실대 김문경(역사학) 교수는 “향토지를 비롯한 각종 자료와 고증을 통해 이 집이 장보고 시기의 신라관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장보고의 지원을 받은 일본의 유명한 고승인 엔닌도 이 집에서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재 이 집 주인인 여쥐밍(62)은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공적을 세워 공산당으로부터 받은 집”이라며 “우리 집이 문화유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이야 낡고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겠지만 현재 이 집 마당에 있는 돌은 옛날 그대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40분을 날아 저우산 공항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와 배를 타고 들어간 작은 섬인 푸퉈산(普陀山). 이곳 앞바다에 ‘신라초’란 바위가 있다. 신라 배들이 많이 좌초해 ‘신라초’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 1200년 전 장보고 선단이 얼마나 활발하게 당과 교역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푸퉈산 불교문화연구소 왕롄셍(69) 연구원은 “푸퉈산지 등 여러 기록에 신라초에 대한 기록이 있다”며 “당시 중국과 한국의 교역이 대단히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중국의 산둥성 룽청시 츠산(赤山) 법화원은 장보고의 대중국 전진기지로 손꼽힌다. 츠산 기슭에 자리 잡은 법화원 아래는 장보고 시절 신라촌이 있던 곳이다. 청해진을 떠난 장보고 선단이 머물던 곳이자 중국 관련 정보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은 “츠산 법화원은 장보고의 대중국 전진기지이자 산둥반도 일대의 신라인을 결집시키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산둥반도에서 저장성 닝보, 푸젠성 취안저우를 비롯해 해안과 대운하 인근 곳곳에 자리 잡은 신라방과 신라촌은 장보고 선단의 세부 네트워크 역할을 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산둥성 펑라이시 신라관 유적, 저장성 샹산현의 ‘신라오촌’, 푸젠성 취안저우 진강 유역 신라촌 흔적 등이 그것이다. 진강 유역에는 지금은 문을 닫은 학교 건물에 ‘신라소학’이란 이름이 걸려 있었다. 현지 주민 왕페이원(70)은 “어려서 ‘신라 사람들이 예전에 이곳에 살았고 뒷산에 신라선원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청해진은 글로벌 종합상사 본부=장보고의 청해진 옛터인 전남 완도는 요즘 본섬과 장도를 잇는 관광객용 나무다리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땅을 파던 중 지름 30㎝ 안팎의 나무 말뚝 8개가 촘촘하게 연결돼 1m 넘게 박혀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이주승 완도군청 학예연구사는 “나무 말뚝이 나타난 지점은 장보고가 활동했던 청해진 본진(장도)의 출입구 쪽”이라며 “방어 목적으로 남서쪽 해안선을 따라 목책(木柵)이 300m 정도 만들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섬 정상(해발 30m)에 올라서면 좌우로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흑산도를 거쳐 중국으로, 왼쪽으로는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바닷길이다. 약 1200년 전 장보고가 이 바닷길을 이용해 당나라와 일본을 오갔고 이슬람·동남아 상인들과도 교역했다. 장보고는 이곳에서 ‘대사(大使)’라는 공식 직함으로 청해진을 총지휘했다.

그는 청해진을 본부로 중국·일본 을 연결하는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장보고 연구가인 서울교대 김호성(윤리교육학·전 총장) 교수는 “청해진은 ‘군(軍)·산(産)·상(商) 복합체’로 토털 솔루션 제공 업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글로벌 종합상사 1호’”라고 표현했다. 한국무역협회도 이 같은 뜻을 기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앞 광장에 장보고의 배가 바다에 떠 있는 대형 조형물(가로 11m, 세로 7m)을 설치하기도 했다.

협찬 :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특별취재팀 ▶ 팀장=김시래 산업경제데스크 ▶취재=김문경 숭실대(역사학) 명예교수, 천인봉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창규·염태정·이승녕·문병주·강병철 기자 ▶사진=안성식·오종택·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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