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화제작들 ‘선덕여왕’ 피해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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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제작비 200억원의 첩보액션극 ‘아이리스’(KBS2)가 이름값을 할 것인가. ‘막장드라마’ 논란을 일으켰던 김순옥 작가의 신작 ‘천사의 유혹(SBS)’은 밤 9시대 시청자를 얼마나 유혹할 것인가.

‘선덕여왕’(MBC)이 제패한 방송가에 화제작이 속속 도전장을 낸다. 14일 첫 전파를 타는 ‘아이리스’는 톱스타 이병헌·김태희 주연에 한반도 통일 프로젝트라는 초대형 스케일을 내세웠다. ‘천사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 시비 속에 상반기를 강타한 ‘아내의 유혹’을 뛰어넘는다는 기세다. 각각 수·목 밤 10시, 월·화 밤 9시대에 편성, ‘선덕여왕’과 정면대결을 피한 것도 전략적이다.

◆대진 상대 골라 편성=‘복수를 위해 원수 집안의 며느리가 된 여인. 그런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가 깨어나면서 벌어지는 반전….’ 12일 첫 방송하는 ‘천사의 유혹’은 시놉시스만 보면 전형적인 일일극이다. 그럼에도 1시간 앞당기는 파격 편성을 해가면서까지 월·화 미니시리즈로 배치한 것은 전작 ‘자명고’ ‘드림’의 잇단 부진 때문이다. SBS로선 차기 야심작 ‘제중원’의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월·화극 주목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 SBS 측은 “시청자 패널 자체 조사 결과 밤 9시대 드라마 시청 요구가 높았다”며 뉴스를 기피하는 중장년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이리스’도 당초 월·화로 예정했으나 방송에 임박해 수·목으로 선회했다. “이 드라마가 안 되면 드라마국이 당분간 문 닫아야 한다”(조대현 제작본부장)는 각오 속에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수목 시간대를 택했다. 그러나 제2의 ‘꽃보다 남자’를 기대하는 SBS ‘미남이시네요’(7일 첫 방송)와 이준기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끄는 MBC ‘히어로’(11월18일 첫 방송)와 맞붙게 됐다.

◆울고 웃는 시청률=시간대 변칙편성을 먼저 시도한 곳은 MBC. 주말 심야시간대 ‘공포의 외인구단’ ‘친구’가 번번히 한자릿수 시청률로 부진하자 일일극의 대모 임성한 작가의 ‘보석비빔밥’을 투입했다. 예능 강자 ‘세바퀴’를 늦추면서까지 1시간 당겨 편성한 결과는 일단 성공적. 추석 연휴 방송분(4일)이 자체 최고 시청률(16%, 수도권 기준, TNS미디어코리아)을 기록하며 상승세다. 반면 트렌디사극 ‘탐나는도다’는 변칙 편성의 희생양이 됐다. 시청층과 맞지 않는 주말 8시대에서 고군분투하다 조기 종영했다.

변칙 편성은 후발주자에겐 ‘틈새 시청층’을 공략할 여지를 주고, 시청자에겐 채널 선택권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주요 시간대가 드라마로 물고 물림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큐·교양 프로가 설 땅은 좁아지게 됐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황금시간대를 드라마·예능으로만 채우는 경쟁은 결국 방송사의 출혈만 가져올 뿐”이라며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장하는 지혜가 아쉽다”고 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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