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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조기교육 아이들만 멍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아이들의 타고난 능력과 기질은 얼굴만큼이나 다르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각종 조기교육 붐을 타고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과다한 학습이 주입되면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말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어 조기교육을 시켜 언어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채인영신경정신과 채원장은 "특히 언어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아이에게 영어 만화비디오를 보게한다든지 해서 영어교육을 너무 빨리 시작한 경우 한국말을 배우는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 고 들려준다. 때론 말더듬이 같은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이가 원만하게 자라나려면 언어능력.인지 (認知) 능력.사회적 적응.정서발달.놀이능력.행동발달.도덕성.운동능력 등이 골고루 발달해야 한다.

예컨대 자폐아란 선천적으로 심한 정서적 결핍을 비롯 이 모든 능력이 다 떨어져 있는 발달장애다.

최근 돌 전 아이들의 뇌를 발달시킨다고 해서 유행되는 F카드 교육 등도 오히려 아이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

김동현신경정신과 김원장은 "외부에서 기계화된 자극이 주입되면 일부분 공간.지각력이 향상될 지 모르지만 논리적.사고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고 강조한다.

게다가 정서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지적 능력 향상만을 강조하면 아이는 매사에 흥미를 잃고 불안증 같은 정서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더욱이 아이를 조기교육시켜 남보다 앞서가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부모들은 흔히 일방적인 지시형이기 쉬워 이런 부모와 매일 공부를 하다보면 아이의 정서장애를 촉발하게 된다는 것.

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홍성도교수는 "아이들은 잠 설치기.밥 잘 안 먹기.많이 울고 떼쓰기 등으로 불안증상을 나타내는데 부모는 치료받아야 할 병인지 인식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며 "어린이 교육은 아이가 힘 안들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

실제로 소아정신과를 찾는 어린이도 증가하고 있다. 김원장은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작년에 비해 외래환자가 10~20%정도 늘어나는 추세" 라고 밝힌다.

언어장애.학습장애.자폐증.정신지체 등의 발달장애, 불안.우울증 등으로 대변되는 정서장애, 문제학생으로 알려진 품행장애나 약물남용 등의 행동장애 등이 대표적인 질병들. 혼이 많이 나는 아이들은 불안감.우울감.열등감 등이 흔하고 분노발산도 잦다.

아이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관심도 아이의 정신을 병들게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기대를 못미치게 마련이어서 열등감만 쌓이고 매사에 미리 포기하는 성격으로 발전한다.

홍교수는 "슬퍼보이는 아이.학습에 문제.교우관계이상.가족을 회피하는 아이 등 부모가 보기에 뭔가 이상이 있어 보일 땐 즉시 소아정신과 전문의 진료를 받아 문제를 파악하고 치료를 받도록 하라" 고 권했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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