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프런트] 탕·탕·탕 … 제주는 지금 들개들과 전투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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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유해야생동물구제단 이찬식(총 겨눈 이)씨와 팀원들이 지난달 29일 새벽 제주시내 한 목장지대에서 들개 포획을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다. [프리랜서 김영하]

지난달 29일 오전 6시30분 제주시 오라동 종합경기장 내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제주지부 사무실. 협회의 유해야생동물 구제단 단원 5명이 전투복 차림으로 모였다. 이어 제주시 봉개동 부근 기생화산인 절물오름 인근으로 갔다.

수렵 경력 13년의 구제단 팀장 이찬식(41)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엽총을 집어 들었다. “2년 전 노루생태관찰원의 노루를 물어뜯었던 무리 중 한 놈이 또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동료 단원 김호철(38)·최재훈(29)씨도 망원경과 엽총을 꺼내 들고 뒤따랐다.

“저 녀석이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무섭게 최씨가 사격 조준 자세에 들어갔고, “탕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50여m 앞에서 내빼던 들개는 고꾸라졌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까지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 한림읍 이시돌목장 주변에서도 같은 작전을 펼쳐 들개 7마리를 더 사살했다.

제주도가 야생 들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들개들이 중산간 지대에 널린 목장과 민가에 나타나 소·양 등 가축을 물어 죽이고 등산객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다. 제주시는 전문 엽사를 동원, ‘들개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다음 달 20일까지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제주시 한림읍과 절물휴양림·노루생태관찰원 등 40.8㎢가 포획 허가 지역이다.

한라산 일대에 서식하는 들개가 노루의 서식 환경과 등반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제주도 성판악 인근 숲 속에서 들개 두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한라일보 제공]

◆들개 피해 극심=제주에서 들개 피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06년 7월 제주시 한림읍 기생화산인 ‘누운오름’ 부근의 축사에 있던 1~3개월짜리 송아지 3마리가 들개의 공격을 받아 이 중 한 마리가 죽었다. 2007년 3월 초엔 봉개동 관광목장에서 사육 중이던 면양 11마리가 들개에게 물려 죽었다.

들개에게 물려 죽는 노루는 한라산 중산간 지대에서 이제 수시로 발견될 정도다. 8월 중순 제주시 한림읍 목장지대에 떼지어 다니던 야생 들개 10여 마리가 목격됐다. 지난달 초에는 봉개동 절물휴양림 부근 민오름에서 들개에 물려 죽은 노루 한 마리가 발견됐다. 김덕홍 제주시 절물휴양생태관리팀장은 “휴양림 등 관광지 산책로에 들개가 자주 눈에 띈다”고 전했다.

제주도는 들개 피해가 늘어나자 지난해 야생동물에 의한 가축과 농작물 피해보상 조례를 제정했다. 지금까지 175개 농가에 2억여원을 보상했다. 부원택 제주시 환경관리담당은 “주민·가축 피해가 커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늑대 닮아가=최근 제주에서 출몰하는 들개들은 아예 인간과 접촉 없이 처음부터 자연상태에서 태어났다. 집을 나간 유기견이 짝짓기를 통해 대(代)를 이으면서 야생 들개로 변한 것이다. 현재 정확한 실태 조사조차 안 되고 있다. 단지 100여 마리 내외로 제주시는 추정할 뿐이다.

야생 들개들은 살기 좋은 서식환경 때문에 생존율이 높고, 개체 수도 불어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심개발지역이 적고, 한적한 목장·초지·산 지역이 많아 생존의 최적지라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경쟁하거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멧돼지 등 맹수류가 제주엔 없다는 것도 들개 번식을 돕고 있다. 게다가 자연보호운동이 지속되면서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노루가 3000여 마리까지 불어나는 등 먹이사슬계에서 하위 초식동물이 많아 들개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강윤호 신제주동물병원장은 “처음부터 야외에서 태어나 자란 2, 3세대 들개들은 생존을 위해 공격 본능이 격화되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초식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사나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개는 야생에서 자라면서 늑대의 습성을 키워간다”며 “집개와 다른 늑대의 유전자(DNA)를 닮아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동기 제주대(동물생명공학) 교수는 “들개 주요 출몰 지역을 조사, 안전경고판을 설치하고 긴급통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 사진=프리랜서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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