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털어 가난한 사람 도와…헝가리판 로빈후드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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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헝가리에서는 요즘 현대판 '로빈후드' 가 큰 화제다.

30대 초반의 아탈리 앰브러스라는 대도 (大盜)가 은행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는가 하면, 검거된 지 6개월만에 탈옥에 성공하는 등 신출귀몰하면서 엉뚱하게도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다.

앰브러스는 지난 6년동안 수도 부다페스트의 주요 국책은행과 민간은행 28군데를 털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4분쯤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항상 2~3분 내에 범행을 끝내고 도주했다.

목격자들은 "앰브러스는 항상 말끔한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범행현장에 나타났으며, 사람을 해치지 않았고 때때로 은행 여직원에게 꽃을 주기도 했다" 고 말했다.

그는 달아날 때는 항상 택시를 이용했고, 운전사에게는 차비를 듬뿍 안겼다.

택시 운전사들도 이 때문에 그를 쫓는 경찰차를 따돌리려고 위험한 경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 하키팀의 골키퍼 출신인 앰브러스는 훔친 돈의 대부분을 이웃에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리가 잡힌 것도 자신의 고향에 스포츠센터를 지어 기증한 것이 단서가 됐다.

그는 결국 돈의 출처를 추적한 경찰에 덜미가 잡혀 지난 1월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12일 수감돼 있던 부다페스트의 한 감옥에서 감쪽같이 탈옥, 다시 한번 경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당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국민 여론이 앰브러스쪽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탈옥한 직후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5%가 앰브러스가 다시 붙잡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다.

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그는 헝가리의 영웅" 이라고 전했다.

탈옥 직후부터 그의 얼굴이 새겨진 컵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네티즌들은 그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 독일의 한 스포츠 음료회사는 음료 캔에 앰브러스의 얼굴을 새기기로 했으며,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사들도 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제작할 것을 검토 중이다.

앰브러스의 높은 인기는 훔친 돈을 거리의 상인이나 청소원 등 가난한 이웃에게 모조리 나눠줬기 때문 만은 아니다.

사회심리학자 기요르기 세펠리는 "그에 대한 인기는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헝가리의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금융자본가들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반영된 것" 이라고 말했다.

앰브러스는 현재 부다페스트 근교의 은신처에서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도피 중에도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앞으로 합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어 훔친 돈을 갚겠다며 자신에게 선고될 15년 가량의 형량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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