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우문제 너무 어렵게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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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우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보면 정부의 해결능력이나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를 계기로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60조 가량의 부채를 당장 모두 갚아야 할 것처럼, 내일 제2의 위기가 올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미 몇 개월 전에 시작된 대우의 유동성 위기가 경기회복이 가속화된 최근에 표면화된 것은 정책실기가 아니라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일단 불거진 대우문제가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부가 지나치게 소심한 정책을 펼 가능성에 있다.

우선 대우문제를 과거 재벌체제의 공통적인 요소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의 불황속에도 멈추지 않았던 대우 특유의 확장경영으로 분리해 볼 수 있다.

높은 부채비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경기침체시의 파산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우와 달리 다른 기업들이 빚을 줄인 것은 정부의 독촉도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한 자구노력의 일환이었다.

위기를 모험으로 극복해 보려던 대우 경영진의 결정은 그들 자신이 책임지면 될 일이지 온국민이 볼모가 돼 끌려갈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발을 빼라는 얘기는 아니다.

대우 없이도 이 나라는 굴러간다는 확실한 믿음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국가신뢰도가 흔들리는 것은 대우문제 자체때문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신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대책이 신뢰성을 얻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대안의 실효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충분한 공적자금의 투입가능성을 과감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 대우가 파산한다 해도 그 손실액을 정부재정으로 흡수해 대우문제를 한국경제와 분리해 한 기업의 문제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이 오히려 대우부실을 국내외에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다.

부실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부의 소극적 대처로 대우문제가 한국경제의 다른 구석으로 비화할 가능성이다.

초기의 밋밋한 지원규모에 실망한 증권시장이 추후의 대규모 자금투입 의지에 진정됐던 것도 같은 이유다.

대우자산의 상당부분은 건실하거나 회생가능성이 큰 것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정부의 개입의지가 강할수록 대우의 회생이 가속화돼 실제 공적자금 투입은 작아질 수 있다.

정부정책이 신뢰성을 갖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일관성이다.

우연인지 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의 대우처리방식은 그 내용이나 시점이 대체로 적절한 편이었다.

너무 서둘렀으면 대우의 저항도 컸을 것이고 우리 경제가 충격을 흡수할 여력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말이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말아야 하고, 처리방식도 사안이나 당사자별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각 계열사의 결정, 담보권의 분배나 출자전환과 같은 세부사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연구기관 등에서 다양한 정책대안이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데 무엇이 그리 급한지 당국자들 입에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의 일관성 없는 발언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해외채권단에도 같은 상황이라면 국내채권단과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주고, 싫으면 말라는 식으로 딱 부러진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훈수꾼들에게 떼밀려 정책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바뀐다면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은 다시 흔들리고 관련당사자들은 모두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해질 것이다.

대우문제는 우리 정부의 정책능력과 개혁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딱 부러지는 내용에 반드시 지켜질 것 같은 약속만이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의 신뢰도는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도로 이어져 대우의 회생가능성을 크게 할 것이다.

지금은 국내정책에 대한 외국정부의 간섭까지 받으며 우리 기업을 바겐세일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다.

문제를 한 두가지 원칙에 근거해 쉽게 생각할 때 대우를 포함해 모든 관련당사자가 웃을 수 있는 해답이 나올 것이다.

전주성 이회여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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