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분할매각싸고 정부-노조 '삐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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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기업 민영화의 시금석인 한국전력 분할매각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전노조가 발전부분 분할매각에 반대, 한전사상 최초의 파업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민영화와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시기와 방법을 놓고는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은 한전 민영화의 쟁점을 살펴본다.

◇ 민영화 시기 논쟁 = 정부는 당장, 노조는 10년 뒤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한전을 당장 팔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투자재원 마련을 꼽는다. 한전 이경삼 (李京三) 관리본부장은 "한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6조2천억원 정도로 연 매출액 (15조원) 의 40%에 이르는데다 매년 10%씩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맞추려면 연 9조원을 새로 빌려야 한다" 며 "이대로 가면 3년안에 파산할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발전부문을 팔아 1백억달러 정도의 외화가 들어와야 재원부족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는 발전부문을 산 외국업체들이 새 발전소 건설을 위한 투자도 끌어올 것으로 기대한다.

또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성봉 (趙成鳳) 전력연구단장은 "한전 분할매각이 차질을 빚으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 (IBRD) 등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러나 노조는 한전 매각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줄이려면 전력수요가 포화상태가 되는 2010년쯤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산업경제연구원과 삼일.안진회계법인의 96년 한전 경영진단은 빠른 시일내 구조조정을 시작하고 착수 12년뒤쯤 완전 민영화할 것을 권했다.

◇ 전기요금 싸질까 = 정부 계획에 따르면 분할매각 직후 전기요금은 대폭 인상된다.

한전과 한국개발연구원 (KDI) 의 지난 2월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쟁체제 도입시 적정 전기요금은 현재보다 17.5~22% 오른다. 그러다 분할된 민간회사끼리 경쟁을 해 장기적으론 가격이 낮아진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의 민영화 모델인 영국의 경우 90년 민영화 후 92년까지 산업용.가정용은 각각 29%.24% 요금이 올랐다가 이후 95년까지 매년 2.4~5.3%정도 하락했다.

그러나 한전노조는 "영국의 요금이 낮아진 것은 값비싼 석탄 대신 북해의 값싼 천연가스로 발전연료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부가 요금을 낮게 눌러와 아무리 경쟁해도 지금보다 떨어질 수 없다" 고 주장한다.

특히 일반용에 비해 싼 전기요금을 냈던 제조업.농어업등 산업계는 KDI연구대로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연 3조1천5백억~3조4천8백여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판이다.

노조는 굳이 지금 팔지 않아도 요금을 현실화하고 무연탄.액화천연가스 (LNG) 산업 지원, 중소기업 보조 등 1조원 상당의 공적부담을 덜어주면 공기업 체제로도 효율이 향상돼 나중에 훨씬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것이다.

◇ 효율성 시비 = 정부는 한전을 그대로 두면 비효율로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한전의 1인당 판매 전력량이 세계 최고라지만 자회사 인력을 합치면 노동생산성은 일본.독일.미국보다 낮다는 게 산자부의 분석이다.

그러나 노조는 반드시 쪼개 팔아야 할 정도로 한전의 효율성이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 서울대 기초전력공학연구소의 지난해 7월 연구보고는 한전의 생산성을 세계 35개 전력회사중 4위로 평가했으며 민영화 여부는 생산성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전노조 권원표 (權元杓) 위원장은 "노조는 지난해 인력 3천8백명 감축에 동의했 듯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성급한 분할매각에 반대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안성규.강찬수.정철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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