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 사업 신규진출 외국선 OK 한국선 NO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건강식품업체인 보미바이오텍 고재경 (高載景.50) 사장. 그에겐 규제개혁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요즘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렁이 전문가.

23년째 지렁이를 기르며 6년 전에는 지렁이로부터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는 혈전 (血栓) 을 녹이는 물질을 추출, 국내 S제약에 원료의약품으로 납품해왔다.

또 건강식품으로도 사용 가능성이 커 지난 94년 캐나다 밴쿠버에 회사를 만들었다.

캐나다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식품판매 허가도 받아 아미노산 식품의 시험판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미국.일본에서도 식품판매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이 문제였다.

高사장이 본격적인 수출을 앞두고 원료 생산회사인 보미바이오텍을 순천향대 의료창업보육센터에 설립한 것은 올 2월. 하지만 캐나다에 수출하기 위해선 한국의 판매허가서를 첨부해야 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렁이는 혐오식품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공하더라도 식품으로 허가내줄 수 없다" 고 밝혔다.

高사장은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지렁이.곤충 등에서 특수단백질을 찾아내 고부가가치 식품을 개발하는데 한국은 개발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판" 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여전히 높다.

인허가제와 같은 공식적인 진입규제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진입규제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런 시장진입 제한은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고, 기존 업체들의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낳기도 한다.

또 독점의 폐해로 부패가 만연한다.

올 3월 전기공사업 2종 면허를 취득한 H사의 權모 (44) 사장. 그는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매달 줄잡아 30만~80만원을 쓴다.

정부가 면허를 취득한 지 1년 미만인 업체들은 낙찰 후 막상 계약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통상 공사금액의 30%에 달하는 입찰보증금을 미리 내도록 했기 때문. 반면 1년 이상된 업체들은 입찰등록시 보증금을 지급각서로 대신할 수 있다.

權사장의 이유 있는 항변. "수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만원을 예치토록 하거나 실효도 없는 보증서를 내도록 하는 것은 기존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진입규제 아닙니까. "

뿐만 아니다.

경제현장에서의 중복규제 또한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어 기업들에 불필요하고 과도한 부담을 안겨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1년 동안 무려 98회' . S건설 金모 (45) 부장이 안전점검 노이로제에 걸린 이유다.

金부장은 97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울시내 한 지하철 공사장을 맡으며 3일에 한번꼴로 점검을 받았다.

점검기관도 노동부.산업안전관리공단.지하철건설본부.서울시.구청.경찰서.대학교수단 등 무려 20여곳. 일상점검이나 화재예방점검.수방 (水防)점검 등 명목은 다양하지만 점검코스나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더욱이 전문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실효없는 점검을 밥 먹듯이 한다고 생각하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었다.

공사현장에는 이미 감리원 15명과 공무원 5명이 상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욱 문제는 한번 점검반이 나오면 책임자급 현장관리자의 수행을 요구하는 바람에 줄잡아 연 1천1백35명이 동원된다는 점. 여기에다 점검에 대비하느라 3백여명의 현장인력이 한차례에 평균 2시간씩 사전점검에 매달리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에서만 연간 9억5천만원, 모두 23개 업체가 참여한 6~8호선 공사현장 전체로는 2백18억원 상당의 인력손실이 생겼다는 게 金부장의 추산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현행 중복규제는 토지이용 6건.안전 6건 등 9개 분야에서 모두 23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대기업의 은행 참여제한 등 10건은 한 부처, 심지어 동일 법률 내에서까지 이중으로 족쇄를 채우고 있다.

기획취재팀 = 박의준. 하지윤. 왕희수. 양선희. 박장희. 나현철.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