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⑫ 삼성서울병원 조혈모세포 이식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장비를 김유정간호사가 점검하고 있다.

대기업 간부로 일에만 전념하며 지냈던 홍길동(가명·51·남)씨. 그는 올 봄부터 어지럽고 피로한 증상이 생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심한 빈혈이 나타났다. 당시 홍씨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5.5g/dL(정상은 12~16g/dL)였다. 지난 5월 16일 그는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다.

암치료만 받으면 효과 적어

응급 혈액검사와 골수검사상 급성 백혈병(혼합형) 진단이 내려졌다. 항암 치료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백혈병이다. 치료를 담당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철원 교수는 5월 21일 급성 위기를 넘기기 위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혈모 세포이식을 위해 적절한 공여자를 찾았다. 1차 대상자는 형제다. 다행히 홍씨는 형제가 9남매다. 8남매 중 맨마지막에 검사를 받은 63세 맏형의 혈액이 이식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형제 모두가 부적절할 땐 현재까지 이식 서약을 한 18만 명의 기증자를 검색해 적합한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때 공여자를 찾을 확률은 70% 선이다.

원심분리기로 혈액서 조혈모세포 채취

정철원 교수가 조혈모세포 이식 후 무균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홍길동(가명)씨를 진찰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홍씨는 즉시 항암 치료로 현재의 암세포를 박멸하고 면역억제 치료도 받았다. 이식될 맏형의 조혈모세포가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홍씨의 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백혈구 수치가 ‘0’으로 떨어지면서(정상: 4000~1만 개/㎣) 각종 감염병에 시달렸다. 면역력이 떨어져 병원균에 무방비 상태가 된 탓이다. 물론 위기의 순간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적절한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했다.

9월 7일 건강이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알맞은 상태가 되자 홍씨는 재입원해 몇 가지 치료제를 투여 받은 뒤 9월 15일 맏형의 혈액에서 채취한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다.

조혈모세포 공여자는 혈액 채취 4~5일 전부터 말초 혈액으로 백혈구가 많이 모이도록 GCSF란 약제를 투여 받는 준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정 교수는 “일시적으로 근육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GCSF는 부작용이 거의 없고, 가벼운 진통제 사용만으로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홍씨의 맏형도 이 과정을 거쳤다. 맏형의 조혈모세포는 채취가 끝난 뒤 즉시 수혈하듯 홍씨에게 주입됐다.

무균실서 회복, 면회도 유리창 너머로

조혈모 세포이식 후 환자는 무균실에서 회복을 기다린다. 환자를 만나려면 무균실 병동 밖에서부터 4단계의 유리로 된 보호막을 거쳐야 한다. 각 단계의 보호막을 거치는 과정에서 먼지는 10분의 1씩 줄어든다. 통상 먼지 숫자는 공기 1㎣당 100만 개인데 보호막을 거칠 때마다 10만→1만→1000→100(환자가 있는 무균실)으로 급감한다. 압력 장치도 안의 공기만 밖으로 이동할 뿐 밖의 공기는 안으로 못 들어오게끔 작동된다. 보호자가 면회를 원할 때도 환자를 직접 만날 순 없으며 무균실 유리창을 통해 이뤄진다. 기자는 정 교수와 함께 먼지가 1㎣당 1000개인 공간에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환자를 만났다.

“힘든 건 없나요?”(정 교수)

“입안이 조금 헐기 시작했지만 식사하는 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홍씨) 샤워기도 화장실도 무균실 안에 설치돼 있다.

“혼자 샤워하고 용변 보시는 데 불편하지 않나요?”(기자)

“괜찮습니다. 정 불편할 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요.”(홍씨)

“현재까지는 치료 경과가 좋습니다. 2주에서 2주 반 정도 지나면 퇴원할 수 있을 겁니다.”(정 교수)

“업무에는 언제부터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요?”(홍씨)

“6개월 정도 안정과 휴식을 취한 뒤에 일을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정 교수)

항암 치료와 조혈모 세포이식으로 머리를 삭발한 채 무균실에서 지내는 홍씨. 하지만 마음은 벌써 활발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발병 이전 상태를 회복하고 있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조혈모세포 이식술은
골수에서 뽑는 건 옛말, 지금은 헌혈하듯 채취

백혈병은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造血母 細胞)가 암에 걸린 병이다. 암세포의 특성, 환자의 나이와 전신상태, 백혈병의 유전자 이상 등에 따라 구분해 환자별 맞춤치료를 한다.

백혈병 중에서도 항암치료 효과가 나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또 실제 항암치료도 했지만 효과를 제대로 못 본 환자에겐 병든 조혈모 세포를 건강한 조혈모세포로 대체하는 조혈모세포이식이 유일한 희망이다.

흔히 일반인이 골수이식으로 알고 있는 조혈모세포이식은 19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됐다. 이 무렵부터 조혈모세포를 말초 혈액이나 제대혈(탯줄혈액)에서도 얻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조혈모세포를 골수에서만 채취했다. 전신마취 하에서 시술을 받고, 시술 후 통증이 심하고 입원도 필요했다.

하지만 말초 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면서부터 헌혈하듯 간편하게 조혈모세포를 공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안전성도 우수하고 골수이식과 달리 여러 번에 거쳐 혈액을 공여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또 이식 후 환자의 회복 속도도 골수를 이식받을 때보다 1주일 정도 빨라졌다. 단, 이식 전 4~5일간 백혈구를 증식하는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출생 당시 제대혈을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법, 환자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법 등도 혈액을 통한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해지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공여자와 달리 환자는 여전히 이식시술 이전부터 여러 가지 사전 치료가 필요하다. 이식을 받기 전에 자신의 백혈병 세포를 제거하고, 타인의 세포를 이식받는 데 따르는 면역세포의 거부반응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환자는 한동안 고용량의 항암제와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아야 하며, 방사선 치료가 병행되기도 한다.

공여자는 시술 후 곧 귀가하지만 환자는 이식받은 조혈모 세포가 거부반응 없이 제 기능을 할 때까지 3~4주간 무균실에서 지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