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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1700, 원-달러 환율 1200원서 미세 조정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거둔 것에 감사하며 내년에는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을 기대하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때가 추석이라는 말이다. 올해만큼 한국 경제에 이 말이 잘 어울리는 때도 많지 않을 듯싶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폭풍 속을 한국 경제는 비교적 잘 헤쳐왔다. 경기 회복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충만하다. 하지만 새해가 밝기 전까진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중앙SUNDAY가 국내외 대표적인 이코노미스트 등 전문가 54명에게 물어보니 “경기 회복이 계속되겠지만 속도가 빠르진 않을 것”이란 응답이 많았다. 주가와 환율도 추석 무렵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볍씨가 뿌려지길 기다리며 겨우내 힘을 비축하는 땅처럼, 한국 경제도 연말까지 체력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해 추석. 토·일·월요일의 짧은 연휴를 끝내고 문을 연 시장에 ‘금융 쓰나미’가 몰아쳤다. 연휴 마지막 날인 15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100년에 한 번 올까 하다는’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튿날인 16일, 코스피지수는 6.1% 급락했다. 원화 가치도 하루 새 4.54% 하락했다. 이날 이후 국내를 비롯한 세계 경제는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왔다.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든 경기가 하락세로 다시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경기 회복, 앞으론 속도가 문제”
설문에 참여한 54인의 경제 전문가 중 경기 회복이라는 큰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가 바닥을 통과했다는 평가에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했다. “지금은 회복이냐 아니냐는 방향성이 아니라 속도가 문제”(키움증권 전지원 연구원)라고 한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달 15일 “미국 경제의 침체가 거의 끝난 것 같다”고 선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무리로 포르쿠갈 부총재는 최근 “세계 경기 회복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다”며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3%로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IMF는 이미 7월 국내 경제에 대해 “바닥을 쳤다”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산업투자조사실 이재우 선임연구원은 “다른 경제지표가 좋게 나오기는 하지만 고용지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고용이 살아나 소비가 활발해지지 않는다면 회복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보다 미국 등 해외 경기가 더 큰 문제라는 평가다.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나 신용카드 연체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동유럽 금융위기 가능성도 상존한다. 최근 미 오바마 정부의 핵심 경제 관료들이 “경기 바닥을 말하기엔 이르다.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기 회복의 형태는 U자형(27명)이나 W자형(12명)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V자형을 점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만약 경기가 살아나는 듯하다가 다시 꺾이는 이중 침체(더블딥)가 나타나더라도 그 시점은 내년 상반기나 하반기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연말까지 큰 변화 없이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 정책으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지고 실물 부분의 회복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더블딥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내년에 걱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아예 “더블딥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시, 급등 없지만 급락도 없을 것
환율·유가·금리·주가 등 4대 가격 변수도 연말까지 숨고르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국내 기업들은 원화 약세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삼성그룹은 올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원-달러 환율을 1040원으로 가정했다. 그런데 상반기 원-달러 환율은 평균 1350원 선에서 움직였다. 사업계획상에서 보다 원화 가치가 달러당 310원이나 낮았던 셈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경우 수출 비중이 높아 달러당 원화 가치가 1원 떨어지면 영업이익이 300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상반기 평균 환율이 달러당 986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환율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1분기 적자를 낼 것이라는 증권가의 예상을 뒤엎고 4700억원의 흑자를 낼 수 있었다. 2분기에는 2조5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 외 LG전자·현대차 등 수출 대기업 대부분이 좋은 실적을 내놨다.

그러나 4분기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달 말 달러당 1200원 선이 무너졌다. 원화 가치가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38명) 최근 흐름이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그렇다고 원화 가치가 급등해 기업에 타격을 입힐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말까지 현재 환율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달러당 1150~1250원 선을 예상한 이들이 다수(42명)였다. 이 정도 환율 수준이라면 기업들이 버틸 만하다. 삼성그룹은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원-달러 환율을 1100원으로 잡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203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인들이 채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환율은 달러당 1192원이다.

배럴당 75달러 선을 향해 가던 국제유가는 지난달 중순 이후 주춤하고 있다. 현재는 65달러 선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 중이다. 투기 수요가 줄면서 잠깐 조정을 받고 있지만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소수였다. 60%가량의 전문가가 유가가 연말까지 오름세를 나타낼 것으로 봤다. 배럴당 70~80달러에 이르면 경기 회복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 유가가 급등하면 물가는 오르는데 소비는 늘지 않아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유가가 85달러를 넘어 지난해 여름과 같이 배럴당 150달러 선까지 폭등하는 일은 없을 것”(수출입은행 이재우 선임연구원)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기준금리는 올 2월 2%로 낮춘 이후 지난달까지 동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응답자의 60%) 한국은행이 내년 1분기쯤에 금리를 올릴 것으로 봤다. 기준금리를 섣불리 올렸다가는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지만 치솟는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올리고 싶지만 올릴 수 없는’ 한국은행의 입장을 고려한 듯, 시중금리는 벌써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초까지 2.57%에서 꿈쩍 않던 91일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최근 2.74%까지 급등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연말까지 시장금리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환율·유가·금리가 연말까지 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전망에 따라 주가도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연말까지 코스피지수 1600~1800선을 점친 이들이 대부분(40명)이었다. 장화탁 동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아 주식 투자 매력이 여전히 높은 데다 앞으로 벌어들일 기업 이익을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도 외국인이 딱히 매도나 매수 쪽으로 기울지 않는 1050~1150원 선에 근접하고 있다. 유일한 악재는 단기간에 너무 급등한 데 따른 심리적 부담이다. 연초 1100선에서 출발한 주가는 1700선까지 올라섰다. 올 들어 50% 올라 조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동호 한국투신운용주식 리서치팀장은 “상승 추세가 무너지고 하락 반전하기보다는 호흡을 가다듬기 위한 약간의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출구 전략은 내년 1분기에
전문가 네 명 중 세 명은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1~0%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성장률은 플러스로 돌아서 2~4%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가정한 성장률(4%)이나 국내 경제 예측기관 9곳의 평균치(3.8%)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IMF·스탠더드앤드푸어스(S&P)·HSBC 등 외국계 예측기관 13곳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4.3%까지 올려잡고 있다.

이런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현재의 경기 회복 추세가 원만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예기치 못한 문제가 부각된다면 전망치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내수 부진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영용 원장은 “지금까지의 회복을 이끌었던 주요 요인은 정부 주도의 지출과 수출 기업의 선전이었다”며 “정부 지출은 한계 상황에 다다랐고 수출 기업의 선전은 이제 경기 회복을 추동할 만한 새로운 동력이 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렇다면 이제는 투자와 소비가 관건인데 투자는 구조조정 중이라 요원한 상태이고, 결국 소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경기 회복세가 꺾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외 대선진국 수출 부진(28명)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경기 회복이 무사히 진행된다면 그 다음에는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내년 1분기에 출구전략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정부의 공식 입장대로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한 사람은 한 명에 불과했다. SC제일은행 오석태 상무는 “정부가 내년 지출을 올해보다 3.3% 줄이고 한국은행은 시장금리 상승을 용인하고 있다”며 “드러나지 않는 낮은 강도의 출구전략이 연말까지 계속된 뒤 내년에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 설문 도움 주신 분(가나다 순)=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위원, 곽병열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원, 김도성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대표, 김승진 삼성금융연구소 상무,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실장, 김일광 국민은행연구소 연구위원, 김재홍 신영증권 연구위원, 김종수 NH투자증권 연구위원, 김주하 농협중앙회 금융기획부장, 김중원 HMC투자증권 책임연구원, 김진성 푸르덴셜투자증권 연구원, 노재웅 산업경제연구소 경제조사팀 파트장, 노진호 하나금융연구소 금융시장팀장, 도병원 삼성투신운용 리서치센터장, 류종윤 코미코 대표,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책임연구원,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선임연구원,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거시경제팀장, 송재혁 SK증권 연구원,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실 수석연구위원, 신동화 기은경제연구소 금융경제팀장, 신종웅 프라임감정법인 대표,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오석태 SC제일은행 상무,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 유신익 LIG투자증권 선임연구원, 윤창용 IBK투자증권 연구위원, 이경수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이동호 한국투신운용 주식리서치팀장, 이민구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거시분석팀장,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분석부장, 이성권 신한금융투자 선임연구위원, 이재우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이정준 교보증권 책임연구원, 이준구 신한은행 FSB연구소 팀장, 임주재 주택금융공사 사장,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장화탁 동부증권 수석연구위원,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전종우 삼성증권 거시경제파트장, 전지원 키움증권 연구원, 정문석 한화증권 연구위원, 조병현 동양종금증권 선임연구원, 조성준 메리츠증권 연구위원,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 조세프 라우 크레디트스위스 한국 담당 이코노미스트, 주이환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 최호상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연구위원, 허문종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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