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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주도 성장에 대한 오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4호 35면

지난달 정부는 내수기반 확충 정책을 내놓았다. 경기회복을 공고히 하고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수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출 주도 성장의 한계나 부작용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과거에는 수출이 잘되면 동네 구멍가게까지 잘됐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수출이 늘어나도 내수 진작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성장을 수출에 의존하다 보니 세계경제에 따라 국내 경기가 출렁거리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수 위주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과연 내수 주도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 모습은 어떨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오해의 소지도 있어 보인다.

우선 내수 주도의 성장이 가계의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현재 우리 국민은 돈을 안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못 쓰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1990년대만 해도 20% 내외를 기록하던 개인의 순저축률은 최근 4%대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부채를 늘리는 것인데, 이미 부동산 매입 등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 있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없다.

지금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나라로는 민간의 저축률이 높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큰 중국 정도일 것이다. 중국은 가계 저축률이 20% 수준이고 경상수지 흑자도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른다. 이 정도 되면 해외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를 늘리는 정책도 가능하다.

내수 주도의 성장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도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간 181개국을 살펴본 결과 수출보다 내수의 성장 기여율이 높은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 주도형 국가들의 거시경제 변동성이 수출 주도형 국가보다 작다고 볼 수도 없다. 미국과 중남미 국가에선 내수가 과열돼 오히려 경상수지 적자나 가계 부채 문제 등으로 경기 급등락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내수 주도 성장이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하는 것 역시 보장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이 많은 개도국의 부러움을 산 것도 성장뿐만 아니라 안정성과 분배 면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성장 모델을 뒤엎기보다는 약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수출 주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력 산업의 수출 증대가 부품·소재 산업 등 연관 분야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를 높여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전자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관련 부품이나 설비·소재 등의 경쟁력도 향상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둘째로는 소득 수준에 걸맞은 내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고급 제품은 물론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요가 새로 창출되기 마련이다. 특히 오락·문화·관광·의료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수요가 늘어나고 이와 관련된 내수 산업에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이해집단이나 단체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진입 장벽을 과감하게 낮출 필요가 있다.

내수가 성장을 주도한다고 해서 경제가 더 안정된다거나 양극화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정책으로 수출 위주의 성장을 내수 위주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 무리하게 내수를 살리려다가 가계나 정부의 부채 증가, 국제수지 악화 등 부작용만 키울 수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소득 수준에 맞는 내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21세기를 맞아 우리의 성장 모델을 정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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