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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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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침고요 수목원' 동산에 무궁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그 폭염을 견디고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무궁화는 대체로 아침에 피어나고 저녁에 진다. 짧은 시간 피어있는 꽃이지만 아침이면 무수한 꽃이 계속해서 피어나 어제 져버린 꽃들의 자리를 채운다. 질기고 질긴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처럼 줄기차게 피고 지는 꽃이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은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인데 구약성서 아가서의 사랑의 서사시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는 그 이름의 꽃이기도 하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다. 해마다 이맘때면 피어나는 꽃이지만 올해 유난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러 종류의 무궁화 중에서도 나는 백단심계 무궁화가 좋다. 하얀 꽃잎에 꽃심은 선홍색을 띠고 있는 무궁화가 바로 백단심계 무궁화다. 이 꽃을 들여다보노라면 꽃심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생명의 기운이 하얀 꽃잎으로 스며들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백의민족이 겪어온 험난한 역사 속에 흘려진 무수한 이들의 선혈과 땀방울이 그것에 어려 있는 듯싶다.

무심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렇게 중얼거리노라면 어린 시절 즐겨 놀던 그 놀이가 생각난다. 술래가 돌아서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는 새, 몰래 술래를 향해 다가가는 그 놀이 말이다. 어린아이들 입을 통해 온 나라에 이 감격적인 외침이 울려 퍼지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돌연 그 첫번째의 외침이 궁금해진다.

난 지금까지 두 번의 전쟁을 경험했다. 내가 태어난 달은 칠월이다. 그것도 6.25전쟁이 터지던 그해 칠월에 태어났다. 사실 내 생애의 첫번째 그 전쟁은 스물네살의 어린 내 어머니가 나 대신 겪은 전쟁이었다. 그 시절 폐허가 된 땅에서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외쳐댔고 가난한 여름날은 저물어 갔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라는 끔찍한 가사의 군가를 아무런 뜻도 모른 채 그때의 아이들은 불러대곤 했다. 그 후 청년으로 자란 내가 군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이 두번째의 경험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한 세대가 전란을 겪지 않고 평화스럽게 지나간 때가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 민족이 통일되어 진정으로 하나 된 세월이 얼마나 있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 이것들을 그때의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워하고 소망했었는지, 그리고 이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들을 언제 다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힘겨운 역사를 잊고, 그 교훈을 상실한 채 살고 있다. 일제 36년의 아픈 역사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투쟁하던 독립투사의 이야기, 그 만세소리도 모두 지나간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닌지. 6.25의 그 포성과 총성, 그리고 사라져간 무수한 생명들의 이야기들도 잊은 것은 아닌지.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된 듯하다. 가난했던 시절 먼 중동까지 가서 처자식을 먹여 살렸던 노동자 이야기, 베트남 파병 이야기, 모두 잊혀진 이야기들이 된 듯하다. 역사를 잊어버린 자는 그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마저 잊어버린다. 상실의 비극이다.

올해도 무궁화 꽃은 피었다. 얼마나 소중한 꽃인가. 언젠가 그 여름, 이름 모를 동산에서 쓰러져간 어느 젊은이의 피를 머금고 오늘 무궁화 꽃은 피었다. 언젠가 그 여름, 남국의 전쟁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던 어느 전우의 유언을 머금고 오늘 무궁화 꽃은 피었다. 그리고 언젠가 중동 열사의 땅에서 가난의 한을 씻고자 땀 흘리던 어느 파견 노동자의 땀방울을 머금고 오늘 무궁화 꽃은 피었다.

역사를 잊어버린 이 상실의 시대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상경 삼육대 교수·원예학